◇ 시인과 시(현대)

김희업 시인 / 공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9. 08:00
김희업 시인 / 공

김희업 시인 / 공

 

 

1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고,어느 시인은 말했지만

사람들은 공만 보면 무조건 차고 본다

기를 쓰고 달려든다

마치 공 속에 뭔가 들어 있기라도 한 듯

갖은 방법 다해 어떻게 해보려 한다

공은 둥글어서 충분히 서럽다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만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는 비밀처럼

공이라는 것은 텅 비어있어서 실체가 없다

공 속에는 그냥 텅 빈空이라서

아무 데고 비천하게 굴러다니다

보이지 않는다

 

2

냄새 풀풀 나는

지구같이 구겨진 모습으로

하수구에 처박힌 공

몇몇 일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아

자신이 버려졌다는 생각이 드는지

누군가 한번 발로 세계 차주길 기대하다 이내

공은 집착을 버리기로 했다

누추해진 지구가 자신의 상처를

둥그스름히 끌어안은 채 살아가듯

下水따라 서서히 몸을 풀어보는 것이다

아직은 괜찮다는 식으로

 

-현대문학 2009년 9월호

 

 


 

 

김희업 시인 / 통조림 보고서

 

 

바다를 분양 받아

독과점하려는 주주와

끌려가지 않으려 완강히 버티는 바다

오늘은 바다의 두께가 한층 얇아졌다

공판장 경매의 손짓은 생선의 죽음보다 앞서 끝났다.

그물에 걸린 어부의 땀방울이 덤핑으로

팔려나갈 즘

생선은 밤시 머문 이곳에서 생의 닻을 내렸다.

해체된 몸

이승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은 모두 지워진다.

오직 깡통이란 가벼운 이름만 재활용으로 남는

텅빈 해탈

등푸른

마지막 밤을 삼킨다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비린내

바다의 주주께 감사의 기도를

그날 밤 꿈 속에서 바다를 뼈까지 샅샅이 발라먹었다.

 

<유통기한>

유통기한 내에 관뚜껑을 따신다면 죽음 그대로의 싱싱함을 맛보실수 있습니다.

<주의사항>

굳게 닫혀있는 관뚜껑을 따실 때에는 특히 생선의 이빨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해 따 십시오.

 

-시집 <칼 회고전>중에서

 

 


 

김희업 시인

1961년 서울에서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칼 회고전』 『비의 목록』. 천상병시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