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백소연 시인 / 껍질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10. 08:00
백소연 시인 / 껍질

백소연 시인 / 껍질

 

 

가지에 매달렸던 설익은 감이

투욱 떨어져 나온다

꼭지가 익기도 전 비상을 꿈꾸었을까

돌부리에 머리가 짓 찢겨

한 생의 의복 왕창 벗겨진 틈 새로

진물 흥건하다

눌어붙은 갈피에 손끝을 얹어보면

끈적끈적한 생의 액이

함부로 비껴 앉지 못한 옴팡한 생채기를

무슨 어린(魚鱗)처럼 에둘러 감싸고 있다

제 속엣 것 죄다 내려놓고 자연이

썩어지는 모든 것들은 아름다운 것일까

밖으로 엎질러져 방치된 껍질의 시간은

밤이 깊을수록 속마저 부패하기 마련인데

가끔, 바람 귀에 고개 끄덕이는 잔가지 아래로

익지 않은 감 비스듬히 눕는다

 

 


 

 

백소연 시인 / 청동 귀울음

 

 

적막의 옆구리 툭 치니

한 천년 극광에 젖은 경전 불쑥

불거져 나온다

유곽 안에 박제된

아홉돌기 젖꼭지 더듬어 가면

피안의 울음 속에 고려의 한 사내가 누워 있다

세월 격랑 온몸으로 받아내었을

저 종, 얼마나 낡은 소망들이 납의를 걸쳤다 벗었을까

제 몸을 내리치면 단숨에

수천 나뭇잎들 물살로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억만 가닥 청동빛 파문

진저리치며 속속 터져 나온다

산그림자 들쳐업은 종신의 둥근 엉덩이가

열리지 않는 바깥으로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세상에 맞물려 귀가 닳은

명징한 울음소리, 진종일 비가 내린다

 

 


 

백소연 시인

전북 임실 출생. 미국 California Union University 음악대학 종교음악과(피아노전공) 졸업 및 Viola 대학 연수과정을 수료, 광주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과(피아노전공) 및 고려대학원 문학석사 졸업. 2002년 《현대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바다를 낚는 여자』 『페달링의 원리』 등. 시나리오: 『궁안의 연꽃』 집필. 『월간 아동문학』 운문부 신인상 수상.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 『대한민국월간아동문학상』 수상. 현)시인, 극작가, 칼럼니스트 외 뮤지션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