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조삼현 시인 / 소리의 방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10. 08:00
조삼현 시인 / 소리의 방

조삼현 시인 / 소리의 방

 

 

새 한 마리 휘익 부리로 바람의 사선을 가르며

늙은 오동나무 귓속으로 들어간다

동굴처럼 어둡고 게르처럼 아늑한,

 

오동나무는 겹겹이 여미고 싶은 나이테의 욕망 대신 몸속에

소리의 방 하나 들였던 것이다 늘 비워 두어 새들과

한뎃잠 뒤척이는 풀벌레며 다람쥐

제 상처에 깃든 것들을 비좁고 넉넉한 품으로 감싸 안았다

천둥소리 바람소리 눈보라 드나들며 몸 데워 가게 하였다

 

어떤 날은 집 단장을 하는지 새가, 옹이에 부리 다친 새가

물렁뼈를 쪼아대어 수심이 깊어지기도 하였지만

온갖 소리들이 오래 머물다간 방은 늘 이명 왕왕거려

귀앓이를 하기도 하였지만, 귀 멀수록 환해지는 오감이어서

오동은 나무의 결속에 더불어 살아온 이웃들의 소리를 귀담았다

 

오동나무, 맑고 푸른 경전을 뜯는다

오동나무가 풀어낸 거문고, 장구, 가야금 중중모리는

소리의 방에 녹음된 오래된 미래를 공명하는 것이다

 

 


 

 

조삼현 시인 / 사랑의 발원

 

 

술 거나해, 여자가 더

빗살현호색으로 보이는 색등色燈

호프집 화장실 문 앞

 

여자는 팔 벌려 누워있고

남자는 엎드려

수작을 피우려는 자세다

 

저 농염한 상형은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은 죄

아담과 이브의

알몸 체위인가

 

진하게 키스하는 모습

사람 인人자처럼 수밀도

달콤한

비밀의 사원

 

포개면

사과 한 알의 원죄, 인류의 기원*

 

여자가 엎드리면 남자가 되고

남자가 누우면 여자가 되는

역설의 평등

 

화장실, 한쪽 문엔 M

또 한쪽 문엔 W

 

* 구스타브 쿠르베의 ‘세계의 기원’ 변용

 


 

조삼현 시인

1957년 전남 영암에서 출생. 2008년 월간 《우리詩》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어느 수인에게 보내는 편지』. 현재 서울남부구치소 재직 중. <시와 공감> 동인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