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시인 / 용치는 남자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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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시인 / 용치는 남자
꼬리 밑을 만지면 심장이 푸르르 요동치고 잔뜩 굳어 있던 비늘이 흘러내린다 펜치와 드라이버가 그의 손 기름때 묻은 몇가닥 전선에 용들은 퉁방울눈을 내리깔고 진흙 묻은 발바닥도 조심스러워진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배 속의 돌을 꺼내려 밑을 활짝 벌리고 주저앉은 꼴이란 손가락 하나로 날아가게도 영원히 눈 뜨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면 커다란 덩치란 별게 아니지 그는 정원에 떨어진 수염 조각을 쓸어 담고 연못에서 비늘 조각을 주워낸다 개복숭아나무 그늘에 졸던 용이 비닐호스 물줄기에 놀라 덜 익은 복숭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저녁이 되면 온몸 가득 불을 밝힌 용들이 떼 지어 그의 동굴집 앞을 지나간다 거대한 공장의 활화산에서 쉼 없이 흘러나오는 석회석을 삼킨 뱃구레들이 털렁털렁 불과 연기를 흘리며 어딘가의 빈 분화구를 찾아간다 그는 동굴 문을 여미며 언덕을 쳐다본다 아침이면 밤새 날다 지친 용들이 또 정원에 와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이정훈 시인 / 안진터널 지나가다
슬래그 29톤 싣고 보름달 따라간다
달려도 달려도 저놈의 꽁무니 한 뼘도 가까워지질 않아 동쪽에 붉게 떠올라 서쪽으로 하얗게 지는 홍동백서紅東白西 귀신들 세상에선 다 반대가 된다는데 삼 년이 지나도록 제사 한번 못 모셨다
달의 운전석을 흘깃 보셨소? 으르렁거리는 엔진 위에 앉아 내리막에선 저 달 한번 추월해보겠소 바람소리 그치지 않는 열여덟 개의 바퀴 굴러 지나가는 길이라면 해도 달도 얼러보겠소
요놈아, 오늘은 나와 내기를 하자 저 산속에 잠든 짐승이 있다 내가 등에 나뭇가지를 얹어놓고 오면 너는 짐승을 깨우지 말고 가지를 집어오는 거다
달빛에도 삭정이 부러지는 밤 아들은 아직 마음 뒤집는 법을 몰라 멧돼지처럼 엎드린 산줄기 지날 때마다 깜박 떠오르는 아버지 별
낮에는 캄캄했다 밤이면 더 환해지는 터널 오르막이 살아났다 다시 죽는 곳에서 차 대가리 끄덕이는 절 받으시고 담배 연기나 한줄기 흠향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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