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식 시인 / 개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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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식 시인 / 개의 시간
사원의 오후는 개의 꿈과 함께 늘어지고 있다 미얀마 법당에선 신발을 벗고 입장을 한다 문턱 아래, 수백 개의 슬리퍼는 홑트림 없이 주인을 기다리는데, 사시사철 오뉴월인 미얀마 개들, 게송을 자장가 삼아 코까지 골며 자고 있다 눈곱만한 예의도 없는 녀석들, 어쩌다 뒷일이라도 봐놓으면, 주위에 있던 신도들 매화틀 물리듯 달려간다. 옥체에서 나온 사리(舍利)급 대접을 받는 축생(畜生)의 시간 전생을 오롯이 파고다 쌓는 일만 하다 환생한지라, 현생의 시간을 당당하게 누리고 있다.
나는 가끔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이십여 일 넘게 오매불망, 죽은 노인을 기다리던 시골 개의 우묵한 눈을 본 적이 있다. 굶주림 끝에서도 낯선 유혹을 마다하던 그 눈의 깊이를 갖고 싶다. 비굴한 내 눈을 붉히게 했던 그 무한신뢰의 눈
바람이 차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뜨거운 눈이 하나 있다 철 지난 안면도 해변, 오가는 차들을 기웃거리며 휴가지 잔해를 더듬던 핏기 서린 눈, 웃자란 털에 가려 가느 다란 빛만 겨우 빠져나오던 실제 맞닥뜨린 것은 눈이 아닌 뜨거운 빛 같은 것이었다 점점 차가워지는 바닷바람을 견디며, 희미해져 가던 주인의 체취는 얼마나 더 오래 남아 있었을까
법당에 누운 무법자의 눈곱 주위로 한 무리 파리 떼가 내려앉았다 간다 견성한 보살님들은 꼬리만 한번 실룩거릴 뿐, 오수에서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는 다른 시간에 맞춰진, 또 하나의 눈이 있다. 평택 국도변 해장국집 말뚝에 묶인, 낯선 얼굴을 보고도 짖지 않는, 오직 하루 두 번 던져지는 뼈다귀만 기다리는 눈 뙤약볕 아래, 자기 몸집만 한 구덩이를 파고들어 궁금한 것 하나 없는 낙담한 눈, 아니 무심하기 그지없는 바로, 법당에 누운 나의 미얀마 보살(菩薩)의 눈이다
나의 하루는, 눈을 채 뜨기도 전 알람시계가 잠을 깨우고, 밥을 먹기도 전 외투를 입고, 차를 타기도 전 식탁에서부터 일을 하고 있다 몸은 저절로 움직이고, 머릿속은 벌써 하루 치 성과를 계산하고 있다
나는 어느 견(犬)나라에 사는 어떤 견종(犬種)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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