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임 시인 / 접接 외 1편
|
하정임 시인 / 접接
그는 강 너머에 살고 나는 그의 너머에 살고, 봄에는 만날 것을 만나러 떠난다 비둘기는 목련 같은 깃털을 날리며 산수유 노란 젖꼭지 위로 여자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점치기 위해 분홍 손가락을 펼치며 치마의 폭을 늘린다
주머니에서 유리알들이 반짝인다 나는 투명하고 밝은 강을 지나며 주머니의 유리알을 강물 위로 뿌리고, 깊은 숨을 내쉬는 물고기들이 수면의 유리알을 물고 춤추는 시간, 정오
그를 만나러 가는 강물은 별들로 부서진 밤하늘처럼 깊게 빛난다 키가 작은 사공은 별자리를 만들듯 노를 젓고, 나는 사랑의 기원에 닿으려는 유연한 여자가 되어 강을 접는다
하정임 시인 / 레이니 걸 스트리트
너무 쉽게 젖고 너무 쉽게 울고, 또 그치고, 닥치는 구름들 사이로 또 또 또 그녀가 달려간다
그녀는 풀리지 않는 의문을 들고 불에 타는 외투를 입고 달린다 찢어진 치마로 비를 받으며 목이 늘어나 언제나 낯선 빗방울이 손목처럼 들락거리는 티셔츠를 입고
빗속을 뛰는 아이들의 이마가 젖는다 그녀는 이마를 불에 타는 외투로 데워주고 치마에서 피어난 꽃을 꺾어 아이들의 입술에 포갠다
불에 데인 이마를 치켜들고, 그녀의 뒤를 따라 달린다
너무 쉽게 젖고 너무 쉽게 우는 사람들이 점점 더 명확히 자멸하는 거리 비의 계절을 지나 레이니 걸, 그림자를 남기지 않고 달린다
-《미네르바》 2010년 가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