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전윤호 시인 / 망명시인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11. 08:00
전윤호 시인 / 망명시인

전윤호 시인 / 망명시인

 

 

나이 먹으니 알겠더군

평생 남의 무덤이나 짓다가

결국은 순장당할 팔자라는 거

키만 한 등짐 지고

뒷골목 종종거리다 사라진 사람들

발버둥 쳐야 벌금 고지서 하나 못 당하는 신세

차라리 네게 망명해

새로운 나라나 만들까

가난한 아이를 위한 헌법을 만들고

외로운 여자를 위한 군대를 훈련시킬까

남을 종으로 부리는 세상

깊은 해자 파고 높은 성을 쌓고

내 손으로 만든 왕관을 쓰고 옥좌에 앉아

모자란 자들이 다스리는

저 슬픈 나라를

아무 미련 없이

내려다볼까

 

 


 

 

전윤호 시인 / 더 깊은 긍정

 

 

저 개도 안 물어갈 놈

아버지가 화나면 하던 말이

자꾸 귓전에 울린다.

입 하나가 두렵고

손 하나가 아쉽던 가난한 가족

불여시 같은 년

아내는 그런 말을 가슴에 담고 산다

내 속에서 개는 늙고

여우는 잿빛이 되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밉지 않다는 것

벌써 후반전

이번 생은 점수만 까먹었지만

승부는 아직 모르고

나는 지지 않았다.

 

 


 

전윤호 시인

1964년 강원도 정선 출생. 동국대학에서 역사 전공. 1991년 월간 《현대문학》의 추천을 받아 등단. 시집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순수의 시대』 『연애소설』 『늦은 인사』 『아침에 쓰는 시』. 『천사들의 나라』(2016)로 한국시인협회에서 주관하는 '젊은 시인상'을 수상. 『봄날의 서재』. 2020 편운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