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엄재국 시인 / 점촌역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11. 08:00
엄재국 시인 / 점촌역

엄재국 시인 / 점촌역

 

 

가야 할 곳이 있다.

 

철로를 달렸던 건 기차와 석탄이 아니라

숨가쁘게 살아 온 사람들이었던

과일 가득담은 가방의 자크를 연신 열고 닫아 보듯

마음 설레던 점촌역

 

멀리 남으로 북으로 떠났던, 또 거기서 몰려왔던 사람들

누군가의 청춘이, 일생이 쓰러지고 일어서던

기차는,

뒤돌아 볼 수 없어 쉬었다 간다

두 눈 속에 석탄 빛 불꽃이 일었던

가슴속 광부여 농부여,

상처받았지만 병들지 않아

떠나는 자가 입술 깨무는 곳

 

먼 데를 떠돌던 기차여

 

지금은, 영강 마주 안고

돈달산 어깨위에 동이 틀 무렵

기적 울지 않아도 네가 온 줄 알겠다

 

네 환한 이마가 우리의 꿈인줄 알겠다

 

-시집 『나비의 방』 中에서, 지혜. 2016년.

 

 


 

 

엄재국 시인 / 장사의 노래 40

 

 

손님을 가게로 질질 끌고 오듯

상가의 어둠은 온다

시장 사람들의 저녁이 장바구니에 실려 온다

진열대에 몸 무성한 상품들,

손님이 온다면 내 눈빛이 상품에 싹으로 돋을 것이다

활짝 열리는 가게 문이 목구멍의 꽃으로 필 것이다

드문드문 빈 가게

용케 문 열고 있는 상가의 빛

채우지도 못한 반쯤 비어 있는 진열대

눈빛 마추치기 주저하는 아내의 손가락이

가게 어디 한 곳 짚을 데가 없어

손님이 상인의 멱살을 잡고 있는

또 오늘의 저녁

바람은 불고, 늦은 눈발이 손님으로 오려나

단 한 마리 팔기위해 동태 온 짝을 패대기치는

어물전 장씨의 눈빛

땅으로 흩어질 것 같은 이마의 주름

쇳소리의 겨울

희미한 불빛의 건물이 달을 막고 있어

어둠인지 별빛인지

먼 곳의 백열등

오지 않았거나 지나간 손님의 발자국 소리

저벅저벅 이명으로 들리는

모퉁이 눈빛들이 홀로들 돌아서는

아침부터 파장인 작은 도시

더 물러 설 곳 없는 낭떠러지 골목 시장

 

 


 

엄재국 시인

1960년 경북 문경 출생. 200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정비공장 장미꽃』 『나비의 방』. 한국문협 문경지부 부회장.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