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심수자 시인 / 맨발의 감정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12. 08:00
심수자 시인 / 맨발의 감정

심수자 시인 / 맨발의 감정

 

 

떼어내는 불두화 꽃잎에서 걸어온 길을 감정해 본다

 

발 부르트도록 걷다가 달리다가

생긴 가슴 통증, 얼마를 더 견뎌야 꽃

바글바글 피워

걸어갈 길에 등불로 밝힐 수 있을까

 

배가 고파 발등밖에 볼 수 없는 나는

지평선 따라 쉼 없이 걸어가지만

땅의 끝은, 잡히지 않는 신기루

 

빠르게 사라지는 양지 뒤에서 밤을 지키는

어둠 속 까마귀

젖은 목소리 들려 올 때마다

칠흑의 하늘에 생겨나는 별자리들은

 

독수리자리, 물병자리, 전갈자리

 

마른 풀잎처럼 헝클어진 감정 가지런히 추슬러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을 수평 맞추느라

두 눈은 자꾸만 붉어진다

 

빛과 어둠 함께 밟으며 어제를 견디고 또 오늘을 견디는

저 맨발의 까마귀를 닮고 싶은 나

 

불두화로 감정鑑定한 감정感情의 무게

손저울에 가만히 얹어본다

 

 


 

 

심수자 시인 / 문장 속으로 들어

 

 

공감이란 단어를 공감하지 못해

가을 하늘에 민낯이 아리다

 

허공의 문장, 바람의 문장, 바다의 문장

쉼 없이 꾸역꾸역 받아먹었으나

겨울을 앞두고 느껴지는 허기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던

비우려 해도 비워지지 않던 웃음과 울음은

머지않아 길 위의 살얼음처럼 바스락거릴 테지

 

초록의 시간 잡으려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를 여러 번

힐끗 뒤돌아본 거기 또한 하얗게 낯선 곳

맨발의 내가, 눈 내린 길 위를 서성이고 있다

 

사방은 벽, 어디를 두드려도 보이지 않는 문

눈빛으로 읽는 단어들은 처마 끝에 매달려

제 무게 겨운 고드름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실낱같은 빛 한 줄기

쓴맛 뒤에 맛볼 단맛을 찾아

겨우내 꼭꼭 씹어 보아야겠다

 

-문예지 한국작가 2023 겨울호

 

 


 

심수자 시인

충남 부여 출생. 2014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형상시문학회, 대구시인협회 회원. 시집 『술뿔』 『구름의 서체』 『종이학 날다』 『가시나무 뗏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