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성명남 시인 / 아름다운 쓸모 1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13. 08:00
성명남 시인 / 아름다운 쓸모 1

성명남 시인 / 아름다운 쓸모 1

 

 

파란색 플라스틱 간이의자 위에

큼직한 돌이 앉아 있다

 

단단하고 강해야 할 숙명을 앉혀놓고

잠시 쉬는 걸까

 

축대나 징검돌에 쓰일 삶이

늙고 병들어 폐기된 걸까

 

쓰러질 것 같은 낡은 의자를

제 무게로 부축하는 걸까

 

어느 날은

의자 위에 눈이 쌓이고, 눈 위에 돌이 쌓였다

어느 날은

의자 위에 빗물이 고이고, 빗물 위에 돌이 고였다

 

구두수선집 앞 주차금지표시판의 하루는

반갑게 맞아줄 것도 아니면서 기다린다

 

차갑게 밀어낼 것도 아니면서 막아선다

헤어졌지만 헤어지지 못한 이별처럼

 

 


 

 

성명남 시인 / 아름다운 쓸모 2

 

 

자동차 바퀴가 누워있다

마모한계선에 도착한 무늬는

속력도 방향도 잃었다

모든 길은 딱 멈췄다

 

굴러야 할 숙명이 보도블록에 누워

별의별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우리를

다 만져 본 바람에겐 시큰둥한 일

 

길 위에 찍어놓은 지문은 안녕 할까

떠난 건, 다시 돌아온 건, 앞바퀴였을까 뒷바퀴였을까

 

몸이 저절로 굴러가는 꿈을 꾸던 날

첫 번째 골목 통닭집 앞에

아무런 표시 없이도 누구나 아는

주차금지표시판이 되었다

흰색 주차선조차 그어져 있지 않은 공간을 사수해야 한다

결연한 눈빛으로 사방을 응시(鷹視)한다

다가오는 엔진소리마다 막아서듯

차가운 바닥에 등짝을 밀착시켰다

 

“폐타이어 따위가…”

 

벌떡 일어나 달아날까? 어디로 굴러가야 할까

서러운 날 이었다

 

버려진 페트병처럼 누워서도 구르는 법을 배울 거야

비둘기, 명함용전단지, 길고양이 말도 배울 거야

구르고 싶을 때마다 바닥에 밀착한 등짝에서

질긴 고무나무 뿌리가 자랐다

 

ㅡ『시인정신』 (2019. 봄호)

 

 


 

성명남 시인

1961년 충남 세종특별시 출생. 2012년 《국제 신문》 신춘문예 시로 등단. 시집 『귀가 자라는 집』. 2016년 세종도서 선정. 삽랑문학회, 이팝시동인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