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 시인 / 한 사람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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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구 시인 / 한 사람
사람들과 원탁에 둘러앉아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웃고 떠들고 있지만 그들이 내게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사건에 열광하는지 관심이 없다 밤이 깊어 사람들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벌레 우는 소리 잠잠해지면 나는 접시를 치운다 꿈이 지나간 바닥을 깨끗이 홈친다 고장 난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가 먹을 빵과 물 한 잔 우리만 알고 있는 사소한 이야기 한 사람이 잠에서 깨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민구 시인 / 배가 산으로 간다
저녁 강가에 배 두 척이 나란히 놓여 있다 저것은 망자가 벗어놓은 신이다 저 신을 신고 걸어가서 수심을 내비치지 않는 강의 수면을 두드린다 거기엔 사공도 없이 홀로 산으로 간 배들을 모아서 깨끗이 닦아 내어주는 구두닦이가 계신가 산중턱에 앉아서 아래 강가를 내려다보다가도 정상에서 나를 굽어보는 어느 구두닦이가 있어 벗어둔 신발을 도루 주워 신는다 누가 언제 저 신을 신을까, 지켜본다 나는 강의 한가운데 불붙은 장작을 미끼로 던지고 수면 위의 기다란 굴참나무 그림자를 들어올렸다 놓는다 산허리가 휘어지며 밀고 당기기를 몇 번일까 회백색 물고기들이 나무줄기에 매달려 밖으로 나온다 그때 누가 나무 밑에서 걸어나와 빈 배에 올라타는지 그의 신발 뒤축에 끌려 산아래부터 중턱까지 흙부스러기가 쏟아진다 또 한 번 배가 산으로 간다 너의 낡은 구두가 빛난다 살아서는 신지 못할 물속에 매달아놓은 조등
-시집 『배가 산으로 간다』 2014.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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