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노수옥 시인 / 가웃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13. 08:00
노수옥 시인 / 가웃

노수옥 시인 / 가웃

 

 

곡식 한 되

그 반을 일컬어 가웃이라고 한다

정확한 양보다 살짝 웃도는 그 분량

그것은 저울의 마음이 아니고 눈금도 아니다

눈대중으로 통하는 양과 길이의 단위

그 말에는 엄마가 들어있다

반은 명확하지 않거나

늘 모자라는 말이다

사람에게 반은 존재하지 않음으로

이때 분별은 잊어도 좋다

그건 사후의 일이기도 해서 반은 과거일 때가 많다

알고 보면 참 외로운 단위

자주 외면 받는 반(半)에게 홀수는 없다

반에서는 덜어내는 일보다

채우는 일이 더 쉽다

단추들은 다 옷의 반

그 지점에 있다

지퍼들도,

반이 없으면 온전함이란 늘 풀린 앞섶 같을 것이다

가웃이라는 말

그 안에는 너무 가볍거나 무겁지 않은

인심 좋은 난전의 잡곡들이 있다

 

 


 

 

노수옥 시인 / 간 빠진 시대

 

 

간과 쓸개를 빼놓고 출근을 하는 샐러리맨들

어젯밤TV에서 곰 한 마리가 챙겨준

간장약을 들고 나간다

 

전철 손잡이에 매달려 한 남자가 졸고 있다

축 처진 어깨에 토끼 같은 딸을 등짐처럼 지고

 

깜박 잊고 쓸개를 챙겨 온 이대리는

팀장의 불호령을 참지 못해 오늘 사직서를 던졌다

연신 허리를 굽실거린

쓸개 빠진 놈만 살아남았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이대리 점심으로 동태탕을 먹는다

쓸개 터진 동태탕

입 안이 쓰다

아무리 뒤적거려도 간은 보이지 않는다

 

퇴근시간

모두 포장마차로 몰려간다

간이 없으니 소주를 들이켜도 상관없다고

 

 


 

노수옥 시인

충남 공주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2015년 <시인정신>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서울시인협회 회원.  중앙대 잉걸회 동인.  시집 『사과의 생각』 『기억에도 이끼가 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