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환 시인 / 글라라 수녀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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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환 시인 / 글라라 수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산골에서 모깃불 피워 놓고 저녁 미사를 드리는 글라라 수녀 나의 사촌 누나
오징어잡이 고깃배 떠나던 여름날 스물일곱 살 처녀로 고향을 떠나 영등포구 가리봉동 마리아 프란치스코 수녀원으로 들어갔던 글라라
예수도 사람의 자식일 텐데 이렇게 박절히 떠나는 자식이 어디 있더냐고 목이 타서 더 울지도 못하던 큰어머니
이제 그녀의 기도는 하늘로 올라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어디 영등포구 가리봉동 어디 목 타던 어머니의 저고리 섶에 우리가 잠든 사이 나직나직 내려오고 있다 나의 누나 글라라
강세환 시인 / 나는 무엇으로 살았는가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살았고 많은 술을 마셨다 등단하자마자 곧바로 작가회의에 가입했고 농성과 집회와 각종 모임도 빠지지 않았다 그 어떤 뒤풀이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김수영과 살았고 또 김종삼하고도 살았다 신경림과 살았고 또 김지하하고도 살았다 또 작가회의에서 만나 의기투합했던 많은 친구들과 살았다 시를 쓰며 살았고 또 시를 읽으며 살았다 단편소설을 읽고 베토벤을 들으며 살았다 창비 쪽에서 쭈욱 살았고 창비 쪽에서 컸다 그러나 친구들은 나를 창비 서자라고 한다 수락산 귀임봉과 무수골 원통사 길에서 살았다 그리고 나는 순간 순간 그리고 천천히 한국 정치와 살았고 한국 정치와 헤어졌다 한국 교육과 살았고 한국 교육과 헤어졌다 . 그러나 나는 천천히 그리고 순간 순간 너를 위해 살았고 또 너를 위해 헤어졌다 남의 시선을 위해 살았고 남의 시선과 헤어졌다 나는 남과 싸웠고 그만큼 나하고도 싸웠다 분노를 위해 살았고 분노를 위해 헤어졌다 슬픔을 위해 살았고 슬픔을 위해 헤어졌다 시를 위해 살았고 시를 위해 또 시를 썼다 시를 위해 시를 썼고 나를 위해 시를 썼다
이젠 아무것도 없이 시를 위해 시와 살아갈 수 있고 시는 시를 위한 것도 나를 위한 것도 아니다 시는 바람의 절친도 구름의 내연녀도 아니고 어떤 권력이나 자본과 동맹도 연합 관계도 아니다 시는 또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시는 결코 아름다운 영혼도 황홀한 언어도 아니다 결국 헛살기 위해 굳이 헛살았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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