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영 시인 / 우왁, 우악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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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영 시인 / 우왁, 우악
어떤 컵으로? 자고로 커피는 좋은 컵으로 마셔야 해요. 이건 고대 한지 제조법으로 만든 컵이죠. 백 번은 행궈 쓸 수 있어요. 이건 이집트산이구요. 좀 더 고급스러운 컵이 있는데, 염소똥으로 만든 컵이에요. 우왁이라고 하죠. 똥이라고 다 같진 않아요. 시멘트 묻은 벽지를 먹었느냐, 슬로베니아 합판을 뜯었느냐, 당신도 그렇죠? 지폐를 먹인 똥도 있어요. 가장 질 좋은 지폐는 지하에 묻혀 있다고 해요. 때묻지 않았으니까. 화폐에 그려진 얼굴은, 염소들만이 곱씹는다니까요. 맞아요. 시대는 언제나 컵으로 통했죠. 종이가 녹기 전에 어서, 쭈욱, 이 동네 기초 질서죠. 취향이 거리를 더럽히면 안 되니까요. 아, 저거요. 당신 것과 같아요. 저질 일간지에 다르긴 달러를 듬뿍 먹인 건데, 특별히 우악이라고 하죠. 애용하면 눈이 멀지만, 중독성이 있어 죽어도 못 끊는다나 봐요. 자, 다음 분. 어떤 컵으로?
-시집 <.zip> 민음사
송기영 시인 / 죽자 살자 먹자
먹자는 죽자와 살자 사이에 낀 기집애.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먹자, 옆방에 있는 죽자는 살자와 더 잘 살자 사이에 낀 놈팡이, 허구한 날 마시고 오늘은 죽자, 그 옆방에 살자는 더 잘 살자와 그래도 살자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아줌마. 간혹 먹자에게 간식을 넣어주고, 죽자에게 술을 받아줄 때도 있어, 죽지 못해 살자는 먹자와 친하지만 가끔 마시고 죽자가 되어서 온 동네를 맨발로 달리지, 먹자는 죽자와 살자 사이에서 외롭게 버티고 있는 기집애, 흰 눈이 펑펑 오던 날, 마시고 진짜 죽은 죽자를 바라보며, 울적한 마음마저 곱씹어 먹자, 홀아비 집주인이 말했지. 그래 어쩌겠냐. 발 닦고 고만 잠이나 자자, 살자, 니도,
-「시현실」 2017,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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