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허향숙 시인​ / 귀가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14. 08:00
허향숙 시인? / 귀가

허향숙 시인​ / 귀가

 

 

저기 노인이 걸어간다

 

시간을 흘리며 걸어간다

생을 흘리며 걸어간다

무상을,

죽음을 흘리며 걸어간다

 

산숙의 목침 같았던 시간들

한 번도 주인이 될 수 없었던

시간을 비우며 절룩,

태아의 잠 속으로 들어간다

 

 


 

 

허향숙 시인​ / 문장을 먹는다

 

 

꼭두새벽부터 식탁에 앉아 문장을 먹는다

 

어떤 문장은 국수처럼 후루룩 단숨에 들이켜고

 

어떤 문장은 오징어처럼 질겅질겅 곱씹고

 

또 어떤 문장은 질긴 갈빗살 뜯듯 물어뜯는다

 

어떤 문장은 비위에 거슬려 게워 내고

 

어떤 문장은 너무 맵거나 짜 눈살을 찌푸리고

 

또 어떤 문장은 더 깊이 발효시키기 위해 저장한다

 

음식처럼 양념을 많이 친 문장은

 

소화가 안 되고 머릿속도 더부룩해진다

 

삼색나물 같은 슴슴한 문장을 먹고 난 날은

 

내 영혼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시집 <그리움의 총량>(천년의 시작, 2021)

 

 


 

허향숙 시인

충남 당진 출생. 2018년 《시작》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그리움의 총량 』 『슬픔은 늙지 않는다』 『오랜 미래에서 너를 만나고』. 현재 한국시인협회 회원. 백강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