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서이교 시인 / 둥굴레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16. 08:00
서이교 시인 / 둥굴레

서이교 시인 / 둥굴레

 

 

이고 지고 산을 넘어 댕기다가

신이 닳아져서 흙이 들어오믄

신세타령이 절로 나오드마

 

마디마디가 산인디

구름도 들르고 바람도 들른께

그 자리에 꽂이 펴서

 

둥글어지드마, 둥글둥글

 

 


 

 

서이교 시인 / 지극히 사소한

 

 

  창문으로 빗방울이 자늑자늑 붙었다 스카프는 벤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고 모자는 사랑을 하고 싶다고 하고 나는 매일 밤 집을 짓는다고 했다

 

  루가 어깨를 털며 들어왔다 스카프는 묶인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하고 모자는 빈 천장을 보는 것이 싫다고 하고 나는 그냥이라고 하자 나의 이유 없음이 더 문제라며 이름 붙이기를 계속하자고 했다 스카프는 휴식 모자는 수줍음 나는 자유 루는 캥거루

 

 루는 캥거루를 보러 호주로 가는 꿈을 자주 꾼다고 하고 린은 스카프를 두르면 플라타너스의 속삭임이 들릴 것 같다고 하고 빈은 쓸쓸할 때 모자를 써야겠다며 수줍게 웃는다 이름을 이어가는 동안 빗방울이 세차졌고 호수는 제 몸을 불리며 더 많은 빗줄기를 받아내고 있다

 

  린 스카프 휴식

  빈 모자 수줍음

  나 장갑 자유

  루 캥거루

  커진 품에서 이유들이 잦아들고 불어난다

 

  오후 다섯 시 저녁이 서둘러 온 듯 보이지만 휴식은 화색이 돌고 수줍음은 자꾸 이마를 만지고 캥거루는 힐리어 호수*에 대해 말한다

 

  힐리어 호수를 생각하자

  분홍이 따라오듯이

 

  우리는 되어가는 중이다

 

*호주에 있는 분홍색 호수

 

 


 

서이교 시인

전남 순천 출생. 본명: 서미숙.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 수료. 2023년 《문학뉴스》 & 《시산맥》 신춘문예 등단. 세계태권도연맹 시범단 연출 감독. 캘리그라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