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교 시인 / 둥굴레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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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교 시인 / 둥굴레
이고 지고 산을 넘어 댕기다가 신이 닳아져서 흙이 들어오믄 신세타령이 절로 나오드마
마디마디가 산인디 구름도 들르고 바람도 들른께 그 자리에 꽂이 펴서
둥글어지드마, 둥글둥글
서이교 시인 / 지극히 사소한
창문으로 빗방울이 자늑자늑 붙었다 스카프는 벤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고 모자는 사랑을 하고 싶다고 하고 나는 매일 밤 집을 짓는다고 했다
루가 어깨를 털며 들어왔다 스카프는 묶인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하고 모자는 빈 천장을 보는 것이 싫다고 하고 나는 그냥이라고 하자 나의 이유 없음이 더 문제라며 이름 붙이기를 계속하자고 했다 스카프는 휴식 모자는 수줍음 나는 자유 루는 캥거루
루는 캥거루를 보러 호주로 가는 꿈을 자주 꾼다고 하고 린은 스카프를 두르면 플라타너스의 속삭임이 들릴 것 같다고 하고 빈은 쓸쓸할 때 모자를 써야겠다며 수줍게 웃는다 이름을 이어가는 동안 빗방울이 세차졌고 호수는 제 몸을 불리며 더 많은 빗줄기를 받아내고 있다
린 스카프 휴식 빈 모자 수줍음 나 장갑 자유 루 캥거루 커진 품에서 이유들이 잦아들고 불어난다
오후 다섯 시 저녁이 서둘러 온 듯 보이지만 휴식은 화색이 돌고 수줍음은 자꾸 이마를 만지고 캥거루는 힐리어 호수*에 대해 말한다
힐리어 호수를 생각하자 분홍이 따라오듯이
우리는 되어가는 중이다
*호주에 있는 분홍색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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