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하한 시인 / 물고기의 잠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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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한 시인 / 물고기의 잠
뜰채에서 튀어 오른 물고기가 수조로 돌아간다 물고기는 잠을 잔다 비가 수면을 두드린다 물살이 물고기를 조금씩 밀어낸다 한 물고기는 물에서 헐떡거리다 죽는다 물고기들의 미래에 놓인 것은 얇고 길고 번쩍이는 흰 것
물고기는 꿈을 꾼다 롤러코스터는 트랙을 달린다 정해진 낙차를 따르는 플롯 눈이 먼 늙은이는 젊었을 때 괴물이 낸 문제를 풀어 왕이 되었다 비가 끝없이 내렸다 그는 진창이 된 길 위에서 지쳐버렸다 자신을 이끄는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눈물 흘린다 그는 쓰러져 숨을 몰아쉬다 죽었다
몸 위로 칼날이 떨어지는 꿈을 자주 꾼다 어떤 사람들은 물로 뛰어 내린다 바깥은 있습니까 나는 잠에서 깬다 마적떼는 도착하지 않았다
비는 그치지 않는다 딸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오빠를 땅에 묻고 죽는다 죽은 반역자와 왕좌에 앉은 사람 하나의 트랙을 번갈아 달리는 열차들 비가 무덤의 흙을 다진다 나는 슬프지 않으면 두려워진다 우리가 신의 손등 위에 있는 공깃돌이라면 어쩌지? 끝도 없이 떨어지는 꿈을 꾼다
나는 하루에 세 번 약을 먹듯 떠올린다
죽은 늙은이의 볼에 비늘처럼 일어난 피부, 그것을 적셔주는 빗물 같은 것, 가축의 숨통, 물고기의
깊은 잠.
설하한 시인 / 이후의 세계
누워있는 이에게 남자가 고백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도 모르게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만 확률적으로 그렇지 않았을 뿐입니다 남자는 그의 발을 씻겨주고 삼베로 감싸주었다 나에게 고백을 한 번 더 해 줄 수 있을까요 남자가 대답했다 나는 시온을 위해 더 많이 울어요 이제 내 이마에 종려나무 잎을 포개주세요 하지만 이마의 뿔은 어쩌죠 아 당신은 복화술사로군요 남자의 말에 나는 투명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시온을 건설해야 합니다 복화술사가 대답한다
남자는 누워있는 이의 이마에 종려나무 잎사귀를 포개어주었다 춥지 마세요 춥지 마세요 이제 가야 합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요 돌아 들어왔듯 돌아 돌아 돌아가야 합니다 실타래를 감으며 돌아갑시다 나는 다른 실타래를 풀며 왔습니다 우리는 작별하는군요 안녕히 안녕히 당신은 사랑스러운 괴물입니다 남자는 누워있는 이의 입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이것은 벽돌이다 복화술사는 잎을 털어버리고는 벽들을 줍는다 그는 포만감을 느낀다
복화술사는 벽돌을 쌓아 올린다 그는 사내와 똑같은 얼굴을 갖고 있다 포도가 썩을 것입니다 포도가 썩고 말 것입니다 사랑 고백을 하는 벽돌 미궁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전시장이 들어선다 이곳은 시온 이후의 세계 당신 이후의 세계 당신 없이 구원이 가까이 온
-「시산맥』 (2021,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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