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은 시인 / 금호동 1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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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은 시인 / 금호동 1 -수제비 끓이는 아침
가짜 미대생을 재워주고 한 달 생활비를 도둑맞은 날 철퍼덕 주저앉은 쌀 독 안에 후회의 구절초만 거룩히 꽂혀있다 ㅡ 빌어먹을 동정은 사치였어 집 밖으로 나가는 길은 허공으로 빨려가듯 사라진지 오래 바깥으로부터 마음이 갇히는 순간의 침묵 속으로 꼬박꼬박 깨어나는 아침이 수제비 국물을 마실 때 핏기 없이 풀어진 수제비 달처럼 부풀어 올라 더욱더 환해지는 슬픔 검불을 엮어 짜낸 듯한 동생의 어깨에 걸린 도시락 없는 가방 어느 행성으로 갔을지 모를 엄마를 배웅하던 비탈길 따라 총총히 걸어가는 뒷모습 허술한 주머니 속, 동전 몇 개가 짤랑 짤랑 소리를 내며 따라 간다 이상과 현실이 실핏줄을 타고 횡단하는 금호동 산2번지 등굣길 죽은 엄마가 안녕을 묻는 길 어둠을 반죽해 끓인 수제비에서 구절초 향을 걸러낼 때 늙은 걸인이 내미는 거친 손의 구걸과 잘린 다리를 이은 낡은 타이어에 대한 동정을 버리는 결심이 필요해 빈 쌀독을 들여다보는 멍한 아침이 길 건너 교회당 종소리에 쿵 쿵 부딪혀 울리는 수제비 끓이는 아침
박호은 시인 / 금호동 6 -눈물 염전
눈물엔 뼈가 없다죠 그럼 무너질까요? 내 눈물 속엔 날카로운 소금의 각이 있어요 소금은 쇠도 삭히죠 서지 못하면 품어 삭힙니다 날이 선 칼날도 조심조심 품어 안으면 언젠가 날이 삭아 붉어지겠죠 당신도 내 눈물을 초유처럼 먹으면 첫사랑의 볼처럼 볼그래 부드러워질 거에요 고집 센 생선도 염장을 하면 서로의 살이 엉키면서 부드러워지지요 중요한 건 믿음이에요 변하지 않도록 절여집니다 아버지는 절여진 생선을 좋아했지만 생선보다 고약한 냄새를 가졌지요 온 식구에게 냄새를 풍겨 모두 뿔뿔이 흩어 놓았죠 그 상처가 싱싱히 자랄 즈음 눈물염전을 물려주고 얽히는 법을 상속했죠 우리는 날 것으로 살길 바랐으나 상속을 피할 수는 없어요 아버지는 썩어가는 엉덩이를 흔들며 소금산으로 숨어버렸어요 우리는 뼈 없이 물컹대는 마음으로 물 없는 도로 위를 기어 다녔어요 개뿔도 없는 개불이었죠 배가 다 닳고 압착된 슬픔이 짭짤한 피를 흘렸지만 소금기 많은 상처는 저절로 아물어 육질의 흉터 꽃을 피워요 무섭든 징그럽든 그건 중요하지 않죠 살아나는 법이 흉터 속에 있는 걸 매끈한 아이들은 눈치 채지 못해요 칼날도 절여지면 녹이 열리죠 녹은 결핍이어서 아무리 먹어도 뱃속은 텅 빈 개불이예요 늘 허기지지만 모든 것을 지닌 듯 불룩하죠 겉모습의 탄성彈性은 잘 염장된 상속이거든요 깊은 수심은 눈물이 불려놓은 바다였어요 슬픔의 염도가 높으면 기억도, 얼룩도, 앞산도 빠지지 않고 둥둥 뜨는 눈물 염전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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