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찬옥 시인 / 오뚜기 예찬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18. 08:00
고정희 시인 / 오늘 같은 날

김찬옥 시인 / 오뚜기 예찬

 

 

빈손밖에 내세울 게 없는 젊은 남자

행복의 뒷면만 훔쳐보다가

둥지가 되는 경계에서 쓰러지곤 했다

 

사업장에서도 밥상 앞에서도 자꾸만 쓰러졌다

쓰러지는 것도 이력이 붙는지 그의 다리에도 근육이 붙어

오뚜기보다 빨리 일어서는 법을 습득했다

 

포기를 모르는 이 남자에게

천운이란 눈 밝은 사과가 달려

여자를 에덴동산에 입성시켰는지는 모르겠다

여자는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옷을 걸치고

우아한 자태로 그 과실을 따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전생을 들먹이던 여자의 입이 닫히고

꽃들이 몸을 열 때마다

무중력으로 떠오르는 생명의 화단

 

인내가 닿은 집,

철 따라 꽃들이 저마다의 선율로 출렁인다

봄의 향기가 내려앉은 상추 고추 토마토 옆

감사의 새싹이 돋아난 진심도 모종해 본다

 

장롱 면허증과 허한 몸을 지닌 여자에게

황톳길까지 품은 안산은 꿈의 동산이다

 

대문만 나서면

꽃봉오리 같은 두 개의 구릉을 품은

또 하나의 작은 안산

귀룽나무가 언 땅에서 연둣빛을 길어 올리고

발끝에는 자주괴불꽃과 제비꽃

걸음걸음 내딛는 보랏빛 꿈

 

벚꽃 동산이다가

아카시아 숲을 풀어 놓고

어느 날 단풍나무 숲이 되는 여자

집에 놀러 온 새털구름이 물었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느냐고?

-계간 『아토포스』 2025년 여름호 발표

 

 


 

 

김찬옥 시인 / 허공에 들어선 강변

 

모서리를 품어주는 구름이 있기에

별은 반짝일 수 있는 것이다

 

별은 스스로 밤하늘을 밝히라 하고

구름은 살포시 대낮으로 내려와 하얀 폭포수가 되었다

쏟아져 내린 물살이 허공을 깨워 빛으로 퍼져나간다

 

 


 

김찬옥 시인

1958년 전북 부안 출생. 1996년 《현대시학》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 『가끔은 몸살을 앓고 싶다』, 『물의 지붕』, 『벚꽃 고양이』. 수필집 『사랑이라면 그만큼의 거리에서』. 현재 <광명 사회체육센터유아스포츠단>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