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이영광 시인 / 소리지옥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18. 08:00
이영광 시인 / 소리지옥

이영광 시인 / 소리지옥

 

 

이, 천년 전의 마야 인형은

마른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웅크려 울고 있다

 

들어서는 안 될 소리가 파고 들어온다, 어쩌랴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던 자세가 몸부림친다

저렇게 산채로 굳었으리라

 

소리는 이미 돌 속에 단단히 스며들었는데

소리는 몸을 깨뜨리고 찢고 電氣처럼 우는데

어쩌면 그것은 원래 몸속에서 나타났던 것이었는데

어쩌면 그것은 세상 밖에서 홀연 들려오던 것인데

 

이 천년의 돌사람은 아직도

어딘가로 숨으려는 듯 웅크리고 있다

 

천지에 가득한 울음 들어오지 말라는 듯,

그러나 다시 보면

그 소리 절대로 내보내지 않으려는 듯

결사적으로 두 귀를 틀어막고 울고 있다

소리 내지 않고, 죽지도 않고

 

 


 

 

이영광 시인 / 낚시터 여자

 

 

명주실이 동굴의 깊이를 다 뽑아내듯

생이 질주해 간 여자

동물의 상처를 가진 여자

어리기만 한 기억을 자꾸 게우며

늙지 않는 여자

라일락 라일락 흐린 물 저어

와서는, 깨는 일 고단해

칼끝같이 조는 여자

깨우면 깨질 것 같은,

잠시 풍경이 되었다가

떡밥처럼 꿈에 담겼다가

화들짝 사람으로 낚여 올라오는 여자

저 앉았던 플라스틱 의자에

다 돌아오지 못하는 여자

깨지 않으며 잠들지 않으며

졸음에 낚여 들어가는 여자

생각하지 않는 여자

생각하면 죽고,

생각하면 살고,

낚시줄이 꿈의 속살을 다 누비도록

피 흐르지 않던 여자

여자였던 여자

아, 여자는 많고

여자의 꿈은 깊어서

이 강산 낙화유수 어디에나

하나쯤은 섰던 듯한데

그리워 손짓하면 없는 여자

사랑없이, 사랑없이, 사랑하자고

사랑만 하자고 덤비는

낚시터 여자

 

 


 

이영광 시인

1967년 경북 의성 출생. 고려대 영문과 및 同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빙폭〉 외 9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직선 위에서 떨다』 『그늘과 사귀다』 『아픈 천국』 『나무는 간다』 『끝없는 사람』 『해를 오래 바라보았다』가 있음. 2008년 제8회 노작문학상, 2011년 제11회 지훈상, 2011년 미당문학상 수상,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