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석 시인 / 한 송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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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석 시인 / 한 송이 집을 땅속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그는 땅속에 있었다 내어 쉬는 숨이 아니라 안으로 잦아드는 숨을 쉬고 있었다 작다는 말이 성립되지 않았다 없다고 하는 말이 맞다 있다고 하는 말도 맞다
밤이 되면 집으로 잦아드는 사람들 그들은 어디엔가 있다 어디엔가 있으므로 어딘가에는 없다
그 사람 a는 직선으로 걸어가서 미래에 있고 그 사람 b는 현재에서 순간을 매듭짓고 그 사람 c는 마이너스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는 가끔 외출 한다 그는 가끔 있다
외출하기 위해 며칠을 땅속을 뚫고 나온다 땅에서 생생한 모습을 끌어올려야 한다 집을 땅속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오늘은 이쪽 잎을 달고 내일은 저쪽 잎을 달고 또 오늘은 물관을 타고 순을 키워 꽃받침을 세우고 또 내일은 꽃을 거울에 띄우고 이상적인 그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가 아름답다면 집에 와서 가족의 밥을 차리는 동안에도 그가 아름답다면 외출했을 때를 떨쳐내지 못한 것이다 며칠 동안 컵에 담긴 꽃처럼 피어 있을 것이다 목이 잘린 꽃은 며칠간 꽃을 반영하고 외출을 마친 사람은 며칠간 외출을 반영하여
고요함을 넘어 오래 정지된 순간을 중심으로 돌며 며칠간 집으로 드는 것이다 집으로 들 때 떨어진 꽃잎을 모아 한 다발 이야기, 외출하던 자세로 약간 공중에 떠 있는 자세로 말라가는 꽃 한 송이, 작게 응결되는 씨앗 하나 -계간 『신생』 2023년 봄호 발표
박춘석 시인 / 어느 사진작가의 고백 2
술 취한 사람이 꼿꼿하게 걷는 사람들 무리 속에 섬으로 떠 있다는 걸 아는가? 불구의 눈을 가진 자만이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기에 나의 눈은 하이에나를 닮아 갔네. 동물적인 감각으로 짚어가는 그 허허로운 여백에 야행성의 빛들이 꿰이더군.
햇살의 유목민인 나는 어둠의 신비를 한 올 한 올 벗겨내었네. 해가 뜨면 안개가 걷히는 원리를 터득하는 순간이었지.
안개의 내부에 자유로운 구속이 있듯 신비로움은 늘 하늘거리는 겉옷을 걸치고 고유의 향기를 키우고 있었네. 나는 미세한 안개 속으로 들어갔네. 순간 실루엣 같은 벽이 사라지고 플래시 속의 그들은 태양을 베어 문 채 환히 웃고 있었지. 웃음소리의 파편들이 흩어지다 곧 결빙되었네. 빛과 소리들이 말라버린 허깨비 같은 웃음에는 한 점의 영혼도 머물지 않았더군.
지나온 길이 낯선 이유는 거기에 자네가 없기 때문이라네. 다년간 잡다한 세상을 수집하면서 나 또한 낯선 길 위에 낯선 사람이 되어 있었네. 내가 만든 침묵의 모형들은 한 찰나의 역사도 보듬지 못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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