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비 시인 / 양파의 감정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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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 양파의 감정
새빨간 망에 담아 베란다에 던져둔 양파 흐늘한 미련이 연초록 싹을 내밀면 비릿한 묵은 감정이 자늑자늑 올라오지
물컹한 냄새 코를 찌르면 벗겨내야 할 관계 얄팍해진 가슴일랑 훌훌훌 던져버리고 헤식은 웃음소리는 한 톨 한 톨 까야지
끈적한 지난 날이 질퍽하게 속삭여도 짓무른 기억들은 바삭하게 말려야지 봄날은 또다시 오고 새 양파는 많다지
-《율격》 2023, 제7집
김나비 시인 / 당신을 지워드립니다 -디지털 장의사*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인터넷 바다 은밀함이 출렁이는 가상 공간에 밤이 들면 하나 둘, 전원을 켜고 누리꾼이 몰려들죠
포인트가 정해지고 의자 펴서 앉으면 싱싱하게 복제된 루머가 손맛을 당겨요 뿌려진 악성 댓글은 미늘처럼 상처를 내죠
삭제할 어제를 꿰고 추를 멀리 던져요 커서가 빛의 속도로 사이트 찾아가면 시간을 감았다 풀며 얼룩진 상흔 닦아요
비린 영상과 매운 소문에 더 이상 숨지 마세요 촉수觸手에 박힌 아픈 바늘을 살며시 빼줄게요 제로의 디지털 기록, 온라인 족적 염殮해드려요
*인터넷상의 불법 게시물에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의 요청을 받아 합법적으로 삭제를 해주는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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