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이하 시인 / 무섬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20. 08:00
이하 시인 / 무섬

이하 시인 / 무섬

 

 

골짜기의 말이 더 깊어지고 메마른 손이 귀를 덮어 기척 끊어진 길

소리 서늘해지는 계절의 허공 끝에

공포栱包 없이 타오르던 검붉은 광배가 쏟아져 내린다

저물 무렵 지천에 꽃 무리 숨어든 무섬에 함께 든 능선과

어우러진 맞배의 기품 든 그늘 마당은 어스름이 발소리에 갇혀 있고

 

무너진 기적처럼 여울의 흐린 물빛만 바삐 나선 외길과

교각에 남긴 연흔인가

되돌리지 못한 걸음처럼 햇살은 어둠으로 빠져

그리운 것들로 메워진 무섬의 모래바람 속을

이른 별빛으로 서성인다

적막의 강을 거슬러 오르던 달빛과

무성한 소문의 내력은

무성無聲의 타래를 더듬어

강의 옷섶을 붉게 물들이고

잿빛 구름으로 앞섶에 부려놓은 하현달이

소신燒身의 허물처럼

어두운 숲의 뒷모습에 뒤척인다

샛강은 암전에 일렁이고

강 그림자를 밀고 당기던 물잠자리

비수의 빗소리에 길을 떠났다

 

발끝에 채는 벌레 울음이

먹감의 방죽을 서둘러 휘돌아 나가며

섬 사이 벼랑 깊은 그늘

늦가을 맵찬 비를 맞는다

물이랑 긴 외다리를

무섬은 바삐 건너가고 있다

 

 


 

 

이하 시인 / 불문부답不問不答

 

 

두서없는 편지 같다

 

부푼 열매처럼

이별을 기다리는 검은 몸

 

비닐은

침묵으로 펄럭거린다

 

등을 채근하는 바람에

마른 가지도 주억거린다

 

오래 다져 온 마른 뼈

상처로 내려서는

 

바람보다 가벼운

적막의

검은 파란

 

 


 

이하(李下) 시인

경북 울진에서 출생. 본명 : 이창호(李昌浩), 경희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2021년 웹진 『시인광장』 제10회 신인상을 톰해 등단. 시집 『반란』. 2023년 경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한국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