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희 시인 / 가벼운 땅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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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희 시인 / 가벼운 땅
가끔은 神이 보기에도 남루한 저 땅을 흔들어 놓는 것이다
어정쩡한 흔들림으로는 부패와 카르텔이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을 신도 알고 있다
신이 입증하려 했던 것들은 다 낮은 곳을 대상으로 하고 지진과 기아와 내전이 범람한다 신을 신고 걸어도 신이 멀어지는 현상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발바닥 밑으로 기름이 흘러도 내전은 멈추지 않고 아이들의 이마에 폭탄이 터진다
가난한 사람은 너무 가벼워서 겅중겅중 뛰고 지상의 중력은 부족하다 땅 밑은 무겁고 땅 위는 가벼운 나라들
땅 밑이 뜨거운 나라에 장미가 만발하고 땅이 빛나는 나라는 구충제가 없고 태양이 충만한 나라들은 학교가 없어서 빈곤의 덫이 아이들을 잡아먹고 아이들은 언제 갈라질지 모를 땅 위에다 일기를 쓴다
배고파
조미희 시인 / 가난한 내가 가난한 시를 쓴다
집도 명예도 없는 내가 시를 쓴다
꽃을 앞세우고 장마에 젖으며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하얀 눈길 같은 종이 위에 시를 쓴다
자본주의의 중앙에 앉아 백치같이 시를 쓴다 밥도 되지 않는 시를 쓴다
노동하는 인간이 돼라 손가락질 하지만 시를 쓴다
잠 못 이루며 시를 생각하는 나는 밝아오는 창을 바라보며 가난한 나의 미래를 불현듯 짐작하며 두려워 또 시를 쓴다
가난해서 자꾸 시만 쓴다
-시집 『달이 파먹다 남긴 밤은 캄캄하다』, 푸른사상,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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