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성 시인 / 배관공의 사랑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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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성 시인 / 배관공의 사랑
바람에 휘어지는 빌딩 아래를 걷다 보면 배관들이 연주하는 금관악기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어요
느낄 수 있나요? 63빌딩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게, 자유의 여신상이 에펠탑에게, 건너뛸 수 없는 거리에 붙박여 애태우는 연인들처럼 건축물이 머언 건축물에게 전해주는 내밀한 주파수를,
신림동 높은 산동네 낮은 자취방에서 자려고 누우면 꿈결인 듯 물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누군가 수맥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라 일러줬지만 사실 나는 배관들과 공명하고 있었어요
작은 돌멩이 하나도 우주라서 생명이 흐르는 혈관을 수없이 품고 있다고 해요 그 뒤로 두근두근 배관들의 심장에서 내 심장으로 내 심장에서 건물의 심장으로 맥박이 공명하는 금관악기의 구슬픈 노래에 뒤척이는 밤마다
아주 멀리 떨어진 건물들이 공명할 때면 쇳소리 나는 생체 리듬이 허공으로 울려 퍼지며 하늘을 찢었어요 언젠가 양평 용문사에서 보았답니다 천 년쯤 살면 나무도 한 채의 빌딩이어서 은행나무 한 그루 물관과 체관이 뒤엉키며 휘파람 소리로 울고 있었어요
구만육천오백 킬로미터의 긴 배관을 따라 붉고 뜨거운 강물이 끝없이 흘러가는
내 육체 또한 한 채의 가옥이므로 그 멜로디를 잘 기억해낼 수 있어요 그게 정말 사랑이었을까요?
-시집 《도살된 황소를 위한 기도》, 푸른사상, 2023
김옥성 시인 / 참나무 경을 외는 시간
참나무 참나무 참나무…… 참나무의 자잘한 이파리들이 참된 나는 무(無), 라고 경(經)을 외어준다 그 경을 따라 외다 보면 나무와 나의 시침과 분침과 초침이 겹친다 나이테 속 깊은 곳에 가두어온 반지 하나가 풀려나와 하늘 끝까지 데굴데굴 굴러가서는 하얀 운판을 때린다 그 소리 마음속 날벌레들 깨운다
허공을 떠돌던 딱정벌레들 날개 접고 둘러앉아 전생의 숲에서 흘러나오는 수액을 마시고 있다 청동 날개마다 형제들의 얼굴이 떠 있다
-시집 《도살된 황소를 위한 기도》, 푸른사상,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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