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홍신선 시인 / 겨울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22. 08:00
홍신선 시인 / 겨울

홍신선 시인 / 겨울

 

 

언덕 너머 개울에서 헤어지는구나

겨울이여

그 동안 이 촌락에 와서

한가한 적막이 되어 그 큰 덩치로

떠 잇던 겨울이여

떠서는 잡념도 내게 보내주고

잡소리도 세상에서 움켜다가

저 산곡에 쥐어주더니

한동안의 정의(情誼)도 다 작파하고

개울에 와서 훌훌이 헤어지는구나

 

 


 

 

홍신선 시인 / 겨울 들길에서

 

 

겨울들길,

시린 듯 따뜻한 하늘 한 자락 끌어다

홑겹의 비닐 바람막이로 치고는

힘줄 불거진 앙상한 손가락으로 지나가는 늙은 시간이

 

무시로 쓰다듬던 것.

赤銅色 휑한 찔레덤불 속에 오그라든 불알쪽만한

손때에 길든 반들거리는 바알간 열매 서너 알.

 

그렇다 어느 논물꼬 혹은 여울에서 암몸과 숫몸을

빈틈없이 꽉 짜맞춘

그 깊은 속에서

사소한 균열이 되어 부시시부시시

비집고 나오는

가는 물 몇 방울.

 

아직도 내 부를 노래

겨울의 저편에

이 세기의 끝에 그렇게

선명히 남아 있다.

 

 


 

홍신선 시인

1944년 경기도 화성 출생. 동국대 국문과 및 同 대학원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1965년 《시문학》 추천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서벽당집』, 『겨울섬』 『삶, 거듭 살아도』 『우리 이웃 사람들』 『다시 故鄕에서』 『다시 黃砂바람 속에서』 『자화상을 위하여』 『홍신선 전집』 『우연을 점찍다』, 논문 『한국근대문학이론 연구』 『우리 문학의 논쟁사』 등. 경기도문화상,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동국문학상, 등 수상. 서울예대 강사, 안동대, 수원대 교수, 동국문학인회장 역임. 현재 동국대 문창과 교수로 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