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이 시인 / 사이프러스 외 1편
|
이선이 시인 / 사이프러스
내 죽어 이별할 때 당신은 사이프러스를 심겠노라 했지요 대패 자국 선명한 관棺 내려놓을 구덩이에 울음 묻힐 저 허공에
사이프러스는 뿌리까지 흔들려야 했던 빈 센트 반 고흐의 일생이려니 했는데
불 꺼진 심장 발톱 밑에 감추고 저승 언저리까지 기어코 뻗어가 푸른 심장을 얻어 오리라 했지요
별이 빛나는 밤
별빛 와 닿지 않는 단골 순댓집에 앉아 막 삶은 염통으로 서로의 허기를 채울 때
쌈장에 버무린 양파처럼 녹아내릴 마음인 줄 알았는데 혀끝을 감싸는 맵고 아린 기운은 남았겠지요
거기 어디 즈음 구덩이를 깊게 파고는 내 혀를 심겠노라고 말하지 못했지요
사이프러스 푸른빛으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세우겠노라 말하지 못했지요
이선이 시인 / 이월(二月)
목덜미에 흐린 해 얹어 두고 저물녘 내내 무른 손톱 뜯는 날들이다
이맘때 시간은 슬픔을 먹고 자라는지 어딘가로 가려고 집을 나섰으나 어스름 문지방에 다시 발을 들여놓는 궁색함도 헛헛한 세월에 대들보 하나 얹으려 했으나 지붕이 먼저 무너지는 막막함도 모두 다 손톱에 새겨진 슬픔의 결들이어서 무른 생각만 새록새록 자라고
왼손에 몰두하며 오른손의 운명을 어림잡는 사이 딱히 빌린 것도 없는데 서둘러 무언가를 갚아야 할 것 같은 저녁이 지난 봄 손톱에 들인 봉숭아꽃물처럼 눈썹에 어리는데
등을 켜지 않아도 환하게 어둠이 와서 가늘게 엉킨 손금 풀어 시간의 틈새를 한 땀 두 땀 엮어본다
아무래도 이월은 손톱을 먹고 자라는 달인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