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재근 시인 / 대기자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24. 08:00
김재근 시인 / 대기자

김재근 시인 / 대기자

 

 

밤 기차는 어둡고 어두울수록 혼자지

풍경은 빠르고 차창에 얼굴만 남겠지

먼 밤을 두드린다

아무도 몰래

아무도 들리지 않게

아무도 오지 않게

밤을 건너는 눈 속 레일 소리

여기는 누구도 내리지 않아

누구도 탈 수 없지

해변에는 바람 불고 모래알 흘날리는데

얼굴을 떠나는 표정들

밤의 울음들

해변은 어디까지 검어질까요

언제 내려야 할까요

여기가 천국의 계단이라면

검은 몸을 벗어둘 텐데

물결 위에 누워 실핏줄에 흐르는 물결 소리 들을 텐데

무릎에 올려놓은 손가락

암전해진다

식은 거니,

죽은 거니,

이제 검은 밤이.

파도 너머로 데려갈 텐데

 

 


 

 

김재근 시인 / 여섯 웜홀을 위한 시간

 

 

시간이 벌레처럼 손목을 기어다닐 때 당신의 시계는 멈추고

 

문을 닫아도 다시 바깥. 찬바람 속 나는 손톱에 달을 키우는 목동.

방목한 별들의 울음을 듣다 잠이 들면 내 몸은 얼었다 녹았다 부서지 는 중.

 

숲을 건너온 바람이 눈동자에 번진다. 주머니에서 죽은 새가 운다.

물구나무를 서면 시간이 얼수도 있다는 생각. 허기가 진다.

 

허기가 지면 휘파람 소리는 어둡다.

 

아름다운 목수가 잘라 만든 천체: 비가 새는 걸 본다. 관음(觀音)하기.

반복되는 발작으로 말더듬이는 태어나고 개들은 비가 와도 흘레붙어 즐거워한다.

 

그건 지구 저편 저녁의 일, 중력 때문이라고 그림자가 속삭인다.

그림자의 손을 잡고 내일은 비오고 내 그림자는 없다.

 

발바닥이 두근댄다. 키가 자라지 않는 꽃은 어느 화병에서 죽어갈까.

바람이 몸속에 머물다 떠나는 가벼운 여행 같은 느낌.

 

인디언들은 새해가 되면 사랑하는 사람의 손톱을 땅에 묻어준다.

내가 묻은 인형들 모두모두 안녕한지, 부러진 왼팔을 흔들며 잘 가. 안녕.

 

가시에 찔린 붉은 혀를 쓰다듬고 깨어나기 싫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이상한 꿈들.

명왕성이나 목성 근처, 밤을 통과해 날아온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대가 보여준 지도에는 요일이 없다. 목요일과 화요일이 겹칠 때 그대의 자궁과 자궁을 연결하면 환한 별자리가 될까? 지금도 구름은 무섭고 밤의 냄새는 깜깜.

 

 


 

김재근 시인

1968년생 부산에서 출생. 부경대학교 토목과 졸업. 2007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2010년 제10회 《창작과비평》 신인시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 『무중력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