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윤강로 시인 / 파문(波紋)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24. 08:00
윤강로 시인 / 파문(波紋)

윤강로 시인 / 파문(波紋)

 

 

저무는 겨울 하늘

까만새 아득하게 날아간다

까만새가 멀리 날아가는구나

광막한 하늘에 번지는 메아리

멀어서

멀리서 바라보는 가슴에 와서 닿는

마른 목청의 까만새 울음소리

노을이 타는 연기구름에

시선이 매캐하다

이유 없이 물살짓는,

하찮은 것들이 건드리는,

삶의 비애 같은 것은

부딪혀 오는 것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까마득히 높이 멀리 날아가는 울음소리

심금의 줄이 끊어진 후의 막막한 여운

아무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

 

 


 

 

윤강로 시인 / 바람의 혀

 

 

역사만큼 긴 세월에

인적이 끊어지고 길도 지워져서

달빛이 혼자 사는 곳

경기도 장단 DMZ 남방

내 고향에

겨울이 깊어 눈이 내리겠지

지뢰밭 용케 피해 다니는 뭇짐승의

발자국 지우며

눈 덮인 산야에

산발한 녹슨 바람이

울부짖으며 뒹굴어 살고 있겠지

 

고향이란 말은

나에게 모국어가 아니다

떠돌아 다니는 바람의 언어다

고향이 없는 야생이 되어

잠꼬대도 바람의 언어로 우우 짖으면서

가끔 바람의 혀로 ‘고향’이라고

발음하면 뜨거운 가슴 속 무인지대

텅 빈 하늘에

주루륵 흐르는 몇 개의 별똥

 

-(문학과 창작 2002 년 1월호)

 

 


 

윤강로(尹崗老) 시인

1938년 중국 길림에서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1976년 《심상》으로 등단(박목월, 박남수, 김종길 심사). 시집 『불꽃놀이』 『피피피 새가 운다』 『비어있음의 풍경』 『별똥 전쟁』 『사람마다 가슴에 바람이 분다』 『작은 것들에 대하여』 등.  2011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수상. 현재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보성고등학교 교사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