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양균원 시인 / 천국식당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24. 08:00
양균원 시인 / 천국식당

양균원 시인 / 천국식당

 

 

입도 크고 엉덩이도 크다

식당이 좁다고 그릇이 작을까

허기가 깊으면 퍼 올린 국물이 넘치기 마련

나이 들수록 더 진해지는 립스틱

젓가락에 말린 비빔국수 고추장도 붉다

발 뻗고 속 편한 게 특선 메뉴

체면보다 식욕이 더 비싸다

물은 알아서 공급

반찬 추가는 말해 무엇하랴

수제비에 눈물 채 마르지 않은 양파가 가득하다

아줌마 입소문이 밑천인 이곳

나 좀 봐 달라고 나서는 이 없는 이곳

김밥처럼 속을 말고 드러누울 일이다

토 달지 말고 맛있게 먹을 일이다

땀나는 식당에선 때로 더 열심히

더워질 일이다

 

-시집 <딱따구리에는 두통이 없다>

 

 


 

 

양균원 시인 / 마조히스트 사랑

 

 

어서 오라

미물의 기척으로 다가와

상실의 종량에는 변동이 없게

내 피를 빨아라, 동거자여

가청범위 귓전 반경 1센티

체류시간 2초에서 3초

살갗의 숨결로 기다리고 있다

나설 듯 나서지 않는 날갯짓

흔적 없이 증발하는 무지개 분무

그러다 귓전에 고이는

구불구불한 골목길 고요

불현듯 불을 밝히면

넌 필시 침상 가까운 벽에 붙겠지

난다는 것은 눈길을 끄는 것이므로

공간의 일부로 물화하겠지

세상이 널 주목하지 못하게

너마저 널 느끼지 못하게

정물에 머물겠지

동거자여, 사냥꾼이 노리는 것은

너의 바로 그 은신술

성급히 다가가지 않는다

오늘을 살기 위해

내일의 살기가 필요한 때

망설임 직전에서, 후려친다

불면의 벽에 새겨지는 건

내 심장이 너를 통해 우주에 내보내는

또 하나의 선홍빛 획

동거자여, 모쪼록 다시 만나자

상흔의 가려움만이

우리의 짧은 동숙을 기억할지라도

흡혈은 황홀한 것이니

 

-『문학청춘』 (2018년 여름호)

 

 


 

양균원(楊均元) 시인

1960년 전남 담양에서 출생. 전남대학교 및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어영문학과 졸업. 《광주일보》(1981)와 《서정시학》(2004)을 통해 등단. 시집 『허공에 줄을 긋다』 『딱따구리에게는 두통이 없다』 『집밥의 왕자』. 현재 대진대학교 영문과 교수이며 문예지 『문학청춘과 『시와 문화』 그리고 학술지  『현대영미시연구』 등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 지난 수년간 퓰리처상 및 전미도서상 수상자들을 주제로 발표. <포지션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