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민 시인 / 하류(下流)의 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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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민 시인 / 하류(下流)의 시
다가오는 것은 하류의 물결에 지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나를 견뎌준 건 먼 과거의 어느 시간쯤에서 만난 한 순간
순간의 화인(火印)
이후는 물에 갇힌 수몰주민의 생이었고 때로는 이미 지나가 버렸을지도 모를 어떤 다복(多福)을 나는 무성의하게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루가 습속이 된 이 가죽옷에도 나비의 날개가 헌 눈처럼 부서지고
시계를 보지 않아도 다가올 시간을 예감하는 나이 첫 소절만 들어도 노래의 끝을 개괄할 수 있는 나이 임종이 최후의 목적지가 아니어도 알고 보면 모두 그쪽으로 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은 모두 지나가는 하류의 물결에 지나지 않았다
흘러가지 않는 바람이 없었고 머물 수 있는 바람도 없었고
박승민 시인 / 버드나무로 올라가는 강물
등이 퍼렇게 얼어붙은 배(腹) 밑으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파랑은 또 물컹, 물컹 흘러간다. 같은 몸이지만 다른 표정으로
한때, 밭에서 막 뽑아낸 배추 포기처럼 푸른 시절이 우세한 적 있었지만 폐나 위장 내 기억의 일부는 수장고 속에서 죽었거나 죽어가는 중 아침마다 썩은 구취가 장롱 가득, 하품하는 입으로 아침 해가 들어온다.
몸이란, 죽은 시간과 살아 있는 시간이 겹치면서 서로 충돌하면서 그 무엇으로 살아가는 수로(水路). 어두워지는 한복판에서 빛을 오래 잡고 허물어져가는 물의 반짝이는 등을 본다.
죽은 몸이 푸른 봄을 허공에 걸어놓았다. 살아 있는 작은 잎이 관(棺)을 뚫고 시퍼런 꼭대기까지 삶을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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