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정미 시인 / 달의 시간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25. 08:00
김정미 시인 / 달의 시간

김정미 시인 / 달의 시간

 

 

밤하늘에 찍힌 달의 입술자국

그 금빛 주름 따라

어둠을 양떼처럼 몰고 가던 환한 밤

시간을 두드리는 달의 둥근 심장소리

밤하늘을 지나고 있다

 

저마다

켜 놓은 생의 촛불 앞에서

우리가 달을 먹고 시간을 꿈꾸는 한

달은 고장 난 세상의 어둠을 수리하는 수리공이 된다

 

밤하늘 모서리마다

시간을 뒤적이는 달 숨소리

오늘도 시간 속에 달이 들어 있다

달 속에 내가 들어 있다

달빛 꺼진 사막 같은 길

그 길 위에

달의 시간이 내 생 한가운데 꽃처럼 환하게 피고 있다

 

-시집 <오베르 밀밭의 귀>에서

 

 


 

 

김정미 시인 / 마지막 페이지에

 

 

나는 엎질러졌다

겨울이 자작나무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겨울이 가고 나서야

나무가 대신 오래 울어주었다는 것을

숲이 사라지고 나서야

빗방울이 새처럼 내게 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쪽 어깨를 내어주고도

흔들리지 않는 너는

어떤 바람에도 끄덕하지 않는

슬픔이었다

 

별이 뜨지 않는

마지막 페이지에

누군가 서 있을 것 같아서

 

나는

 

 


 

김정미 시인

1968년 강원도 춘천 출생. 강원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석사 수료. 2015년 계간 《시와 소금》으로 등단. 시집 『오베르 밀밭의 귀』 『그 슬픔을 어떻게 모른 체해』. 산문집 『비빔밥과 모차르트』. 2017년 춘천문학상 수상. 춘처문화재단, 강원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