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시인 / 인왕 1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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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시인 / 인왕 1
인왕은 연옥 어디쯤인 것 같다 나는 그 밑자락에 살고 있어 비 오는 날은 어디선가 굿하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해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도가 필요한
떠돌다 올라타게 되는 버스 같은 것 영혼 같은 것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다 어깨가 무거운 사람들아 네 위에 올라탄 영혼의 버스 요금을 대신 내주렴
불 켜진 전광판으로 몰려드는 살아 있는 것들 어쩌면 살아 있지 않은 환하게 웃고 있는 배우의 맨살에 앉은 하루살이들
눌러 죽이는 내 손가락을 내가 쳐다본다 도망가자 어디로든 가자 해 놓고 나는 십 년째 피 묻은 선풍기로 바위산에 꽂힌 깃발로 빨갛게
몸 파는 여자가 앉아 있던 동그란 플라스틱 의자 위의 빈 그릇 위로 구더기는 구더기를 어디로든 오르려 하고
나는 뭐든 팔아야 하니까 기도 대신
매일 새로운 문장을 하나씩 써 붙입니다 비 오는 곳 영혼 파는 곳 나는 개의 무덤 우리는 바이러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쓰다 보면 팔릴 것도 같습니다 향냄새가 나는 것도 같습니다
김선미 시인 / 인왕 3 길거리 화단에 회색빛 가루가 쏟아져 있어 아니 엎질러져 있어 한 무더기 무슨 재 같기도 하고 뼛가루는 아니겠지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생각이 나 햐얗지도 검지도 않은 낮과 밤 사이 어느 곳이었으니 모든 게 선명하지 않을 때였으니 어둠 속으로 묻힐, 사람이 엎질러지면 저런 모습일까 쓸어담아 볼까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것은 남겨두고 양손으로 눈가루처럼 뭉쳐 던져 볼까 아파트 불빛들이 하나씩 켜질 때마다 추워서 주먹을 꽉 쥔 사람들이 하나씩 나왔다 들어가고 해가 나면 그 자리에 두 눈 개 코 하나 입 하나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어
-시집 『인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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