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선미 시인 / 인왕 1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26. 08:00
김선미 시인 / 인왕 1

김선미 시인 / 인왕 1

 

 

인왕은 연옥 어디쯤인 것 같다

나는 그 밑자락에 살고 있어

비 오는 날은 어디선가 굿하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해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도가 필요한

 

떠돌다 올라타게 되는 버스 같은 것

영혼 같은 것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다

어깨가 무거운 사람들아

네 위에 올라탄 영혼의

버스 요금을 대신 내주렴

 

불 켜진 전광판으로 몰려드는

살아 있는 것들 어쩌면 살아 있지 않은

환하게 웃고 있는 배우의 맨살에 앉은

하루살이들

 

눌러 죽이는 내 손가락을 내가 쳐다본다

도망가자

어디로든 가자 해 놓고

나는 십 년째 피 묻은

선풍기로

바위산에 꽂힌 깃발로

빨갛게

 

몸 파는 여자가 앉아 있던 동그란 플라스틱 의자 위의 빈 그릇 위로

구더기는 구더기를

어디로든 오르려 하고

 

나는 뭐든 팔아야 하니까

기도 대신

 

매일 새로운 문장을 하나씩 써 붙입니다

비 오는 곳

영혼 파는 곳

나는 개의 무덤

우리는 바이러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쓰다 보면

팔릴 것도 같습니다

향냄새가 나는 것도 같습니다

 

 


 

 

김선미 시인 / 인왕 3

 길거리 화단에 회색빛 가루가 쏟아져 있어 아니 엎질러져 있어

 한 무더기

 무슨 재 같기도 하고 뼛가루는 아니겠지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생각이 나 햐얗지도 검지도 않은

 낮과 밤 사이 어느 곳이었으니

 모든 게 선명하지 않을 때였으니 어둠 속으로 묻힐, 사람이 엎질러지면

 저런 모습일까

 쓸어담아 볼까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것은 남겨두고 양손으로 눈가루처럼 뭉쳐 던져 볼까

 아파트 불빛들이 하나씩 켜질 때마다

 추워서 주먹을 꽉 쥔 사람들이 하나씩 나왔다 들어가고 해가 나면

 그 자리에 두 눈 개 코 하나 입 하나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어

 

-시집 『인왕』에서

 

 


 

김선미 시인

1965년 경기도 안성 출생. 2009년 《시에》를 통해 등단,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시집 『마가린 공장으로 가요, 우리』 『인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