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완 시인 / 겨울 운장산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26. 08:00
김완 시인 / 겨울 운장산

김완 시인 / 겨울 운장산

 

 

산이 높아 오래 구름에 덮어 있는

겨울 운장산(雲長山)을  간다

 

애써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는 산

낮에는 햇살에 녹고 밤에는 찬바람에 어는

거칠고 사나운 겨울 산속을 헤치고 간다

 

뒤돌아보면 그렇게 저 먼 길을 지나왔다

우리 인생길처럼 드디어 그곳에 올라선다

천지사방 황량하나 더 깊이 있는 겨울 산

 

끝나지 않은 길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아직은 봄의 소란을 그리워하고 있는데

 

오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가슴 떨리는

혁명 보다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는

내 삶에 스며드는 일상의 황홀을 꿈꾼다

 

바람 세찬 생소한 겨울 산에 오르는 일은

스스로를 오롯이 내려놓기 위한 것일 터  

 

진안은 마이산, 구봉산, 운장산이 있다  

산이 높아 오래 구름에 덮여 있다는

운장산 그 가보지 않은 겨울산을 간다

 

 


 

 

김완 시인 / 적막에게 묻다

 

 

동안거에 들어간 불갑산 아래 겨울 호수에서 보았다

결가부좌로 묵상에 잠겨 있는 눈 덮인 겨울 산

적막을 품고 있는 눈꽃들의 눈부신 화엄華嚴을 보았다

 

간간이 사선으로 날리던 눈발이 수직으로 내려앉아

형체 없이 스러지는 호수에는 작은 새 하나 보이지 않았다

대지의 생명들 모두 숨죽이며 자발적 위리안치 중이었다

 

서해 바다로 눈보라가 몰려가는지 중천에 뜬 해가

제 모습을 잃고 비틀거리는 한낮 연사흘 내내

나뭇가지에 쌓인 눈 무게를 못 이겨 적막을 깨운다

 

뽀드득 눈 밟는 소리에 스스로 놀라는 발자국을 따라간다

하늘에서 만들어져 지상에 머물다가 가뭇없이 사라지는

찰나의 생(生) 가여운 눈이여 집에도 길 위에도 나는 없었다

 

적막이 적막을 물어 나르는 산중에 막막한 생生의 그림자여

중천의 해가 드러났다 사라지는 아득한 그곳에 눈보라 칠 때

외로움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언젠가는 나로 돌아가리라

 

 


 

김완(金完) 시인

1957년 광주에서 출생. 전남대 의과대학 및 동 대학원 졸업(의학박사). 2009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 『그리운 풍경에는 원근법이 없다』 『너덜겅 편지』 『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시낭송회 비타포엠 이사. '늘푸른아카시아', '진진시' 동인. 2018년 제4회 송수권 시문학상 남도시인상 수상. 현재 김완 혈심내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