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박금성 시인 / 반사경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27. 08:00
박금성 시인 / 반사경

박금성 시인 / 반사경

 

 

반사를 잃은 거울 속에서

한 사람이 얼씬거린다

그의 생과 함께 한 여럿의 얼룩이

어둠과 빛으로 점멸하는데

나는 나를 찾을 수 없는 것인가

 

과거를 되비치는 기억도

기억 속 흔적의 늪에서

더욱 흐릿해지고

낮은 밤에 떠밀리고

나는 찾고 있네

 

모르는 사람 손을 잡고

읽을 수 없는 웃음 따라 웃으며 만든 반

사경 속에서

지친 구름은 절뚝거리며 경계선 밖으로 걸어오는데

구름처럼 떠밀리며 나는

여기 있네

 

거울 속 그가 사라지네 몸통 없는 안개처럼

그의 삶과 동행했던 여럿의 얼룩도 사라지네

느린 동영상 속 지는 해처럼

그러나 죽음처럼 즐겁게

 

거울은 흐리고

밤은 밤에 묶여 있고

바람은 땅을 무겁게 밟으며 제 길로 가고

나는 여기 있네

 

기억을 되감아 아름다운 눈물을 다시 만나도

그 사람도, 그와 함께한 얼룩도

사라진 처음의 자리로 오지는 않네

반사를 잃은 거울 속에서 한 사람이 얼씬거려도

 

거울이 더욱 흐려지고

밤은 낮을 부르지 않고

이제 바람은 날개 없이 지상을 떠나고

나는 찾고 있네 나를 떠난 나를

 

 


 

 

박금성 시인 / 무늬 속 껍질

거역할 수 없는 자의 밀고 당긴 힘을

기록하고 있는 바닷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을까

무늬가 빠져나간 조개껍질, 등을 밀어 올린 채

모래에 박혀 있다

겨울 철새들이

단련된 부리로 딱딱한 역사를 쪼아대면

오래전에 죽은 소리를 불러오는 조개껍데기

새무리, 파도의 춤을 따라 멀리 날아간 뒤

모래 둔덕을 비질하는 바람

게으른 햇빛이 조가비를 더듬는 오후

오래된 무채색 관이 열리고

수많은 조탁을 견뎌낸 풀게가 태양을 끌어당긴다

수평선 높이만큼 다리를 세운다

모래알 붙은 더듬이가 금파처럼 넓게 터진다

 

 


 

박금성 시인

1963년 충남 아산 출생.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도신승려, 서광사 주지. 2020년 계간 《서정시학 》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웃는 얼굴』. 충남 시인협회상 수상. 수덕사 성보박물관 관장. 2020년 충남시인협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