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영 시인 / ㄸ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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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영 시인 / ㄸ 변기에 물띠슈 금지 공중화장실 문짝에 붙은 경고문에서 고모가 튀어나왔다 채석장의 부스러지는 돌처럼 살았다 고모는 할머니의 매운 손에 떠밀려 어느 집 식모로 간 날 밤 꽁꽁 언 별의 결정에 찔린 상흔이 육십까지 이어지고 있단다 이미 습관이 된 불면이 당겨 온 아침은 산뜻하지 못하고 오늘도 두통은 바늘 끝처럼 관자놀이에 박힌다 시작부터 내 것이 아닌 삶, 망각은 기억보다도 편했다 그래서일까 일자무식이어도 세상은 다 읽을 줄 안다며 큰소리를 치지만 정작 샤인머스캣은 사인머시기포도가 되고 조카 영준이는 용준이가 된다 이른 아침 고모가 청소하러 가는 곳, 화장실이 아니라 똥간이다. 왠지 된소리 하나로 천박하게 들리는 말 같지만 힘주고 살아 온 인생을 입말로 응축시킨 낱자가 아닌가 예사소리로는 도저히 그 기구한 사연을 다 풀어낼 수 없다는 듯이 메인 목구멍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물기 날아간 낱자인 것이다. -웹진 『시인광장』 2025년 8월호 발표
윤은영 시인 / 아버지는 바닥이다
계속 바닥이다가 한 번씩 숨 쉬러 올라가는 날이 있다 돈이 사람을 따라오게 해야 한다 사람이 돈을 따라가선 안 되지 품 안에 든 돈 다 써버리는 우리 아버지, 존경스럽다 여섯 번째 카센터 육천만 원으로 육성시키고 한 푼 내주는 일 없이 딸 하나 월세방 전전하여 야속하지만 아버지는 원래 바닥이었고 그저 물려받고 사는 핏줄 두꺼운 삶이다 반세기 모은 돈 육천만 원 전부면 아버지 그저 남은 인생 즐기다 가셔요 하는데 바닥, 그게 좋아 아버지마저 지하 셋방 장롱 한 짝 들여놓지 못해 행거에 걸린 사계절 옷들만 주름이 깊어갈 뿐 후드득 비듬일지 모르는 하얀 세월이 떨어져 아버지와 함께 살갑게 낡아간다 올라가야 할 길 놔두고 그냥 바닥인 게 좋다는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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