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숨 시인 / 북촌 외 1편
|
이숨 시인 / 북촌
언덕에서 내려다본다 한옥 지붕들이 가지처럼 담장 사이로 뻗어가 있다
한낮에도 간판은 환해서 줄지은 나무들도 봄은 이른 영업이다
골목은 살구꽃향기를 세놓은 듯 여기저기서 코끝을 불러들이고
북촌에서 한복은 봄꽃과 같다던데
까르르 웃는 외국인들 흐드러지면서 살랑바람으로 걷는다 각기 다른 말도 색깔이 있어 끼리끼리 군락을 이룬다
저들이 맞는 봄은 고국에서도 꽃망울을 터뜨리리라
검은 피부에 커다란 눈의 여인이 옷고름을 고쳐 매는 중이다
북촌의 토요일이 아무도 모르게 사르르 풀리고 있다
이숨 시인 / 어달 해변
빨간 물고기를 뒤집어쓴 등대는 오늘도 하늘을 날고 싶다.
지느러미를 키운 것은 자라서 날개가 될지도 모른다는 집념이다 집념이 오류를 낳고 오류는 꿈의 조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단초이다 지느러미를 펴서 명왕성까지 가겠다는 의지이다 존재했으나 사라진 명왕성처럼 사라지더라도 높이, 멀리 날아가야겠다 시간이 걸림돌이라는 오류를 버려라 그것은 함정에 빠져 더딘 준비를 종용한다 출발은 감각이고 만져지는 물의 냄새 같은 것이다 코로 감지하는 것은 늦다 멀리서 바람 타고 오는 물 냄새를 촉각으로 만지는 것처럼 이곳에 젖은 발로 있지만 산란지를 향해 헤엄쳐 가려는 은하수처럼 한 줄로 이어진다 굴곡지었다가 일직선이었다가 갈피를 못 잡아도 회귀를 준비하는 우주 물고기 전설은 지금도 가장 큰 지느러미를 키우는 중이다
- 시집 《구름 아나키스트》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