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배문한 도미니꼬(수원 가톨릭 대학 학장 · 신부)
종교 개혁으로 혼란했던 16세기에 뜨리덴띠노 공의회 정신에 따라 교회 쇄신에 앞장섰던 가롤로 보로메오는 1538년 10월 이딸리아 아로나에서 태어났다. 열심한 귀족 가운의 2남 4녀 중 차남이었던 가롤로는 노력형으로 파비아 대학에서 민법과 교회법을 공부하였다. 학교 성적은 우수한 편이 아니었으나 당시 학생들이 사치와 방탕에 젖어 있는 풍조 속에서 엄격한 생활로 타의 모범이 되었다.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지 3주 후인 1558년에 외삼촌인 추기경이 교황으로 등극, 비오 4세가 되었다. 1559년 교황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22세의 어린 나이로 추기경이 되어 교회의 여러 가지 중요한 직책을 맡아 많은 일을 해결하였다. 비오 4세의 말대로, 가롤로는 비록 나이는 젊지만 지혜와 희생심, 겸손과 사랑, 그리고 출중한 성덕으로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인물이었다.
분망한 가운데서도 음악과 운동을 즐기고 기도에도 전념하였다. 1562년 형의 죽음으로 많은 재산을 물려받게 되자 사람들은 그가 추기경직을 포기하고 결혼할 줄로 기대하였지만, 그는 반대로 세상의 허무함을 절감하고 사제의 길을 갈 것을 결심하고 25세 때 사제로 서품되었다. 곧 밀라노의 대주교로 성성되었으나, 로마 교황청에서는 여전히 그를 필요로 하였으므로 대리자를 파견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관한 그의 숨은 공로는 말할 필요도 없이 다대하며, 특히 이 공의회 정신에 따라 본당신부를 위한 "로마 공교 요리"를 초안 감수, 발간함으로써 신앙 생활의 향상에 이바지하였다.
1565년 밀라노 대교구에 부임했고, 교황의 급서로 다시 로마에 돌아와 새 교황선거에 참여하였다. 새 교황 비오 5세(후에 성인이 됨)도 가롤로를 고문으로 추대하였지만, 가롤로는 간청을 드려 1566년 다시 교구에 돌아와 죽을 때까지 주교로서 사목활동에 전념하고 교회를 쇄신하여 공의회 주교의 모델이 되었다. 교구 행정을 정비하고 교구 시노드를 소집하였으며, 규칙적이고도 조직적인 사목 방문을 실시하였다. 북쪽 알프스 산골은 본당신부들에 의해 포기 상태에 있었으나 그는 그러한 곳까지 방문하여 설교를 하였다.
당시의 종교적 실천 행위는 세속화하고 성사는 등한시되었으며 많은 사제들이 무식하고 게으른 상태였다. 또한 수도원도 규율이 이완되었고 무질서했다. 가롤로는 이것을 고치려고 애쓰는 한편 교회 쇄신을 위해서는 훌륭한 사제 양성이 급선무임을 깨닫고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또 교구 수도단체를 활성화시키고 교육기관, 양로원, 고아원 및 병원을 설립하면서, 어린이들과 어른들에게 신앙심을 고취시켜 주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따라서, 많은 전교사 양성에 노력하였으며 특히 주일학교를 중시하였다. 결과로 사람들은 깊은 신앙심을 지니게 되었고 밀라노 대교구는 다른 교구의 모범이 되었다.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성직자와 신자들의 모범이 되었던 가롤로는 마지막 교구 회의에서 성직자들에게 이렇게 강론하였다. "당신들은 설교하고 가르치는 임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배우는 데 힘쓰십시오. 무엇보다 먼저 당신들의 생활과 행동 자체가 설교가 되도록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당신들이 이 말을 하고 저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여러분들의 말을 비웃고 고개를 내젓기 시작할 것입니다."
추운 밤 그의 침대가 좀 따뜻했으면 하고 걱정해 주는 사람에게, 찬 침대를 없애는 방법은 그보다 더 찬 침대로 가는 것이라고 답하기도 하였다.
그의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내준 것은 1576년부터 2년간 흉년과 기근이 닥치고 뒤이어 무서운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였다. 지사와 귀족들은 모두 도망쳤으나 가롤로는 수도단체를 동원하여 식량을 나눠주고 예방법을 주지시키며 병자를 방문하여 성사를 주고 사망자의 장례를 치러주는 등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활약함으로써 수많은 생명을 구하였다. 이로써 사람들은 더욱더 그를 따르고, 존경을 드렸음은 물론이다.
극기와 과로로 체력이 소모되어 바랄로에 은퇴, 피정하던 중병을 얻어 1584년 11월 성체를 영하고서는 밀라노에서 46세로 임종하였다. 마지막 말은 "주여, 저는 여기 대령했나이다"였다. 유해는 밀라노 성당에 안치되었고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하여 1610년 11월에 시성되었다. 축일은 11월 4일이다.
나그네 길에 있는 교회는 항상 쇄신되어야 한다. 우리도 성인을 본받아 교회 쇄신을 위하여 노력하며, 누구보다도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쇄신되어 솔선수범 정신으로 복음의 산 증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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