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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모음>/◇ 좋은글모음(4)

아버지의 목발

by 파스칼바이런 2011. 9. 21.

아버지의 목발

 

 

어머니, 아버지, 딸 이렇게 세 식구가 여행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자동차가 언덕 아래로 구르는 큰 사고였습니다.

어머니만 상처가 가벼울 뿐, 아버지와 딸은 모두 크게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특히 딸의 상처가 깊어서 오랫동안 병원치료를 받았음에도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하는 것은 먼저 퇴원한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사춘기였던 딸은 무엇보다 마음의 상처가 깊었습니다.

친구들이 체육을 할 때도 딸은 조용히 그늘에서 그들을 구경만 해야 했습니다.

친구들이 조잘거리며 몰려다닐 때도 딸은 늘 혼자 목발을 짚고 집으로 와야 했습니다.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나마 같은 목발 신세인 아버지가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딸이 투정을 부리면 그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버지가 나서서 말없이 받아 주었습니다. 딸에게는 아버지와 공원 벤치에 나란히 목발을 기대 놓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었습니다.

 

어려운 사춘기를 잘 넘기고 딸은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입학식 날 아버지가 참석해서 딸을 껴안아 주었습니다.

"네가 내 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구나."

 

그 해 어느 날이었습니다.

세 식구가 나란히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마침 앞에서는 작은 꼬마 하나가 공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이 큰길로 굴러가자, 꼬마는 공을 주우러 좌우를 살피지도 않고 길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때 길모퉁이에서 큰 트럭이 전 속력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이때 놀라운 일이 딸 앞에서 벌어졌습니다.

아버지가 목발을 내던지고 길로 뛰어들어 소년을 안고 길 건너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뛰는 모습은 너무나 날쌨고 자연스러웠습니다.

딸은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가 다가와서 딸을 꼭 껴안고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얘야, 이제 말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사실 너의 아버지는 전혀 아프지 않단다. 퇴원 후에 다 나았거든. 그런데 네가 목발을 짚어야 된다

는 사실을 알고 나신 후, 아버지도 목발을 짚겠다고 자청하셨단다.

너랑 아픔을 같이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게 벌써 오년이 되었구나.

이것은 아버지 회사원도, 우리 친척도 아무도 모르는 나와 아버지밖에 모르는 비밀이란다."

딸은 길 건너에서 손을 흔드는 아버지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