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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다(묵시 19,9)

by 파스칼바이런 2012. 3. 29.

 

[그림으로 읽는 말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다(묵시 19,9)

알빈 슈미트(Alwin Schmid, 安, 1904-1978) 신부

 

우리가 감상할 그림은 알빈 슈미트(Alwin Schmid, 安, 1904-1978) 신부가 1964년, 지금은 '참사 회의실'로 사용하고 있는 수도원 첫 성당 제대 뒤 벽면에 그린 작품이다.

2007년 4월 6일 수도원에 화재가 났을 때 훼손되었다가 2008년 1월에 복원되었다.

 

알빈 신부는 평면 구도, 입체 구도, 공간 구도 등 3가지 구도로 벽화를 구성했다.

우선 세 벽면을 따라 세 인물군을 배치하였다. 가운데 면에는 흰옷을 입은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그 오른쪽 면에는 성모님을 중심으로 12사도들이 있으며,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는 13개의 불꽃 모양으로 성령이 배치되어 있다.

왼쪽 면에는 세례자 성 요한과 그 옆으로 어른과 어린이 무리가 배치되어 있다.

알빈 신부는 이 기본적인 평면 구도에 원근법을 사용하여 입체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맨 앞에는 가장 크게 그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그 뒤로는 성모님과 세례자 성 요한을, 그 다음으로는 손을 맞잡고 있는 제자들과 어린이들을, 그리고 맨 뒤쪽으로는 남녀 어른 5명을 그렸다.

마지막으로 알빈 신부는 천상적 공간과 지상적 공간으로 나누어 인물들을 배치했다.

공간 분할의 기준은 그리스도의 왼쪽 뒤와 제자들 뒤와 세례자 요한과 어린이들 뒤에 있는 울타리처럼 생긴 경계선이다.

이 경계선 앞에 있는 인물들은 천상적 존재를 상징하는 흰옷을 입고 있다.

반면에 뒤쪽에 있는 어른들은 지상의 옷을 입고 있다. 흰색은 이콘화에서 천상적 존재를 상징하는 색깔이다.

 

우리의 눈길은 자연스레 한 중앙에 계시는 그리스도께 향한다. 다른 인물들도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 중심적인 성화가 된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천상 존재로서 드러나신다.

세례자 성 요한은 왼편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손으로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라고 소개한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제물로 봉헌하셨다.

십자가 희생제사의 재현이 바로 성체성사이다.

사제는 성체를 신자들에게 보이며 세례자 요한과 같은 말을 한다.

사제의 이러한 동작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역동적인 모습이다.

실제로 우리가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내려오신다.

예수님의 손은 성령을 통하여 구원받은 성모님과 제자들의 무리에 들도록 왼편의 사람들을 초대한다.

 

사도들 한 중앙에 계시는 마리아는 ‘기도하시는 어머니’로 드러나신다.

양팔을 위로 들어 올리는 것은 이콘화에서 전형적인 ‘오란스’(Orans) 동작이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느님이나(탈출 9,29.33; 시편 28,2; 63,5; 88,10) 성전을 향해(1열왕 8,38) 두 손을 들고 기도했다. 유다인의 전형적인 기도 자세였다.

그리스도인들도 이 기도 동작을 전례에 받아들였다. 사제는 두 팔을 벌리고 미사 기도문을 바친다.

기도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인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 봉헌되는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요한 16,23).

파스카의 열매인 성령을 받은 성모님과 사도들의 무리는 교회 공동체를 상징한다. 따라서 성모님은 ‘교회의 어머니’이시다.

마리아는 성찬례에 참여하는 당신 아들딸인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신다.

 

세례자 성 요한은 수도자들의 원형이다.

광야에서 살았던 세례자 요한처럼 초세기 수도승들도 광야에서 하느님을 찾는 삶을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체험한 하느님을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이들의 삶 자체가 증거였다.

세례자 요한이 사람들에게 주님을 알려준 것처럼 수도자들도 삶의 모범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언해야 한다.

 

인물들 가운데 이해하기에 가장 어려운 인물들은 아이들과 어른들 무리이다.

어른들은 노인과 청장년 남녀이고 아이들은 모두 같은 또래의 소년소녀들이다.

어른들은 손으로 자기 앞에 있는 아이들을 잡고 있고, 아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있다.

아이들은 뒷쪽 어른들이 회복해야할 영적 순수함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3-4)라고 말씀하셨다.

어른들인 우리가 마음으로 회개할 때 영적인 어린이가 된다.

모든 것을 온전히 주님께 의탁하는 영적 어린이는 어른들 마음 안에 현존하고 있다.

 

벽화는 성찬례를 거행하는 공간을 관상의 공간으로 만든다.

이곳에서 성찬례를 거행했던 수도자들은 성찬례의 신비를 관상했다.

성체성사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이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복된 존재로서 신원을 깨달은 수도자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기꺼이 따라갈 힘을 얻는다(묵시 14,4 참조).

성체성사는 베네딕도 회원들이 수도승이며 선교사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의 원천이다.

 

글 인영균 끌레멘스 신부

 

[분도, 2012년 봄호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