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의 설교 - 566년, 피터 브뤼겔(Ⅰ) (Pieter Bruegel the Elder, 1525/30-1569) 목판에 유채, 95 x 160.5cm, 부다페스트 셉무베제티 미술관, 헝가리
수많은 군중이 높은 언덕배기 주위에 몰려들어 세례자 요한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긴 검은 머리에 양털로 된 넝마를 걸치고 두 팔을 활짝 펴고 열변을 통하는 요한이 있고 이에 바보스럽고 순진한 표정으로 몰입하여 경청하는 군중과 전경에는 이 엄청난 메시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잡담하는 세 사람도 보인다.
사실상 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가 왼손으로 하늘색 옷을 입은 인물을 가리키며 그가 바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해주고 있는데, 정작 그 누구도 이들 안에 함께 있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눈을 비비고 관찰해야 시야에 들어오도록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 브뤼겔은 이같이 직접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여주는데도 보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고발하고 있다.
혹시 우리 일상 속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진리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지 돌아보라는 따끔한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작품해설 : 박혜원 소피아).
피터르 브뤼헐(大) (Pieter Brueghel de Oude)
대(大) 피터르 브뤼헐
대(大) 피터르 브뤼헐(네덜란드어: Pieter Brueghel de Oude, 1525년 경 - 1569년 9월 9일)은 브라반트 공국의 화가이다.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적 화가인 그는 태어난 마을 이름을 따 성을 삼았다. 1551년 앤트워프의 화가 조합에 들어간 후, 이탈리아·프랑스에서 유학하였다. 처음에는 '민간 전설'이라는 속담 등을 주제로 하여 그림을 그렸고, 후에 네덜란드에 대한 에스파냐의 억압을 종교적 제재로써 극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이어서 농민 생활을 애정과 유머를 담아서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므로 '농민의 브뤼겔'이라고 불리었다. 여기서의 풍경 묘사는 풍경화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작품은 동판화 1점을 포함하여 45점이 알려졌지만 〈장님〉, 〈라벨의 탑〉, 〈농부의 혼인〉, 〈눈 속의 사냥꾼〉 등이 특히 유명하다.
루벤스에게 인정을 받아 그의 작품의 배경을 그린 적도 있다. 그는 인물을 작게 배치한 풍경화를 즐겨 그렸다. 1602년 앤트워프의 화가 조합장을 지냈다.
그는 작품에 서명과 날짜를 기입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1559년부터는 작품 서명에 ‘h’를 빼고 ‘Bruegel’로 적었다.
큰 아들 소(小)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de Jonge)과 작은 아들 대 얀 브뤼헐(Jan Brueghel de Oude)도 유명한 화가이지만, 아버지로부터 미술교육을 받지는 않았다. 장남 소 피터르는 아버지와 같은 제재의 작품 외에, 환상적·악마적 화면을 즐겨 그려 '지옥의 브뤼헐'이라고 불리었으며, 차남 얀은 화초나 풍경을 잘 그려 '꽃의 브뤼헐', '천국의 브뤼헐'이라 불리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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