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박사의 경배 - 알브레히트 뒤러
1504년, 나무에 유채, 100x114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말씀이 있는 그림] 가장 귀한 선물은?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 독일 르네상스 화가)는 작품 <동방박사의 경배>에서 먼 곳에서 찾아온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고”(마태 2,11)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화(聖畵)에서 세 명의 동방박사는 노년, 장년, 청년의 모습으로 각기 다른 연령층으로 표현된다. 신대륙 발견 이후 이들의 이미지는 백인, 황인, 흑인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각기 다른 연령층은 인간의 삶의 세 단계를 의미하고, 다른 인종의 표현은 아기 예수의 탄생은 온 인류의 기쁨임을 상징한다. 이 그림에서 아기 예수의 탄생은 동방박사들(인간세계)뿐만 아니라 영혼의 상징인 나비, 영혼의 불변성의 상징인 사슴벌레,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의 상징인 소와 나귀 등(자연세계)의 표현으로 전 우주적인 의미를 말하고 있다.
그림의 가장 앞쪽에는 늙은 왕이 아기 예수에게 무릎을 꿇은 채 황금을 선물로 바친다. 비록 예수가 아기이지만 황금을 드린 것은 생명의 주인이며, 하늘과 땅의 왕으로서 확신하는 고백과도 같은 행위이다. 황금은 ‘임금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림을 살펴보면, 아기 예수의 손에 닿은 황금은 교회 형태를 한 성골상자(성인의 유해를 담는 것)로, 화가는 예수의 구원적인 희생을 암시하여 표현하고 있다. 늙은 왕은 경배의 몸짓으로 ‘임금의 사랑’을 말한다.
그림의 중앙에 머리가 치렁치렁한 장년의 모습을 한 왕은 섬세하게 세공된 향로에 유향을 선물로 바친다. 유향은 가장 거룩한 제사에서 태우는 값비싼 향료로 유일하게 사제만이 봉헌할 수 있다. 향을 피운다는 것은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기도와 찬미’를 의미한다. 이 그림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이 왕의 얼굴은 바로 화가 뒤러의 모습으로, 그는 당당한 주인공으로 이 사건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그림의 오른쪽에 젊은 흑인은 몰약을 담은 그릇을 오른손에 들고 있다. 그릇의 뚜껑은 죽음과 타락을 뜻하는 뱀의 형상을 하고 있다. 시체의 부패를 막는 몰약은 어린 아기에게 참으로 괴이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돌아가실 하느님의 어린양임을 뜻하는 예물로서 ‘예수의 고통’, ‘상처와 아픔'을 상징한다. 전설에 따르면 몰약은 낙원에서 온 약초로 병을 ‘치유’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따라서 이것은 상처와 고통을 아기 예수에게 내맡김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 속 화가의 자화상 속에 우리 각자의 얼굴을 넣어본다면, 과연 우리의 손에는 어떤 예물이 들려 있을까? 내가 가장 집착하고 소유하고 싶은 것을 아기 예수께 바칠 때 우리는 예수를 진정한 왕으로서 경배하는 것은 아닐지……. 매일 매일 아기 예수를 그리워하는 기도의 향을 올리고, 상처와 고통을 인내하며 참회하는 몰약은 어떠할까?
[2014년 1월 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