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인 아름다운 명판결
서초동 소년 법정에서 열여섯 살 소녀가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난 것이 기소 이유였습니다. 소녀는 작년 가을부터 14건의 절도, 폭행을 저질러왔기에 이번에는 무거운 법정형을 받을 것이 예상되었습니다.
중년의 여성 부장판사가 들어왔습니다.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판사는 소녀를 향해 말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내가 하는 말을 따라 힘차게 외쳐 보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다."
예상치 못한 재판장의 요구에 소녀는 머뭇거렸습니다. 판사는 더 큰 소리를 자기를 따라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큰 목소리로 따라 하던 소녀는,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라고 외치면서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감호위탁이 아닌 '법정에서 일어나 외치기' 판결.....
판사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소녀는 작년 초까지만 해도 홀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림을 꾸려가면서도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발랄한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작년 초 귀가 도중 남학생 여러 명에게 끌려가 집단 폭행을 당하면서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소녀는 후유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고, 비행청소년과 어울리면서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했습니다.
판사는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가해자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이렇게 삶이 망가진 이유를 알면 누가 이 아이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 아이의 행복을 다시 찾아주어야 합니다."
판사는 눈물이 범벅이 된 소녀를 앞으로 불러 세워 손을 강하게 잡아주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꽉 안아주고 싶지만 너와 나 사이에 법대가 가로막혀 있어 이 정도밖에 할 수 없구나. 미안하다."
- 김귀옥 부장판사의 '아름다운 명판결' 에서 -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처럼 가정이야말로 사회의 근본이죠. 가정법원은 사회 근본을 지켜가는 버팀목 구실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소년 전문 법관으로 서울가정법원에서 6년간 일해온 김귀옥 부장판사의 말이다.
그는 지난 4월 14차례 절도ㆍ폭행 사건으로 기소된 한 여학생에게 따뜻한 판결을 내려 유명해졌다. 집단폭행을 당한 후유증으로 절망에 빠져 탈선한 이 여학생에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며 아무런 보호 처분을 내리지 않고 스스로 자존감을 찾을 수 있도록 힘을 북돋워준 것.
"술을 마실 때마다 부엌에서 식칼을 꺼내 엄마를 위협하던 아빠 때문에 엄마와 따로 나와 살던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학생은 엄마와 말다툼을 하면서 부엌칼을 꺼냈죠. 그토록 아빠를 싫어했으면서도 어느새 닮아갔던 겁니다. 사회 어두운 면을 본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거울처럼 반영하게 되죠."
청소년 범죄가 날로 흉폭해져 가지만 김 부장판사는 "그 아이들도 피해자"라며 "처벌 대신 아이들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가정법원도 이러한 점을 고려해 지난 6월부터 비교적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 재판에 또래 청소년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청소년 참여법정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청소년 배심원들이 부가과제를 선택하면 판사가 이 과제를 부여한다. 부가과제는 보통 일기 쓰기, 흡연 청소년 금연클리닉, 무면허 운전 청소년 안전운전교육 등으로 이뤄진다.
지난 1일 서울가정법원에선 오토바이를 훔쳐 소년법원에 오게 된 A군(15ㆍ중3)이 안전운전교육 등 부가과제를 성실하게 이행해 심리불개시 결정을 받음으로써 청소년 참여법정의 첫째 사건으로 기록됐다. 김 부장판사는 "A군은 잘못을 저지른 다른 청소년들의 참여법정 배심원으로도 참석했다"며 "다른 아이들에게 과제를 부여하며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잘못도 반성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고등법원과 동부지법을 거쳐 지난해부터 서울가정법원에서 소년사건을 맡아온 김 판사는 청소년 범죄에 있어 단죄보다는 치유 중심의 판결을 내려왔다. 집단폭행의 후유증으로 절망에 빠져 탈선한 여학생에게 보호처분 대신 스스로 자존감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판결은 사람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이 많이 성숙하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의 규범을 잘 몰라요. 어떤 것이 금지돼 있고 어떤 것이 허용되는지, 어른들에게는 무척 쉬운 일이 아이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어요. 그것만 제대로 알려줘도 바로설 수 있는데 꾸짖고 벌을 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에요."
최근 들어 '따뜻해진 소년재판부'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이러한 영향이 크다. 요즘같이 소년 범죄가 흉포화되는 시기에 너무 안일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대부분의 청소년 범죄가 환경적인 요인에서 비롯되는 것을 볼 때 아이만 탓하고 벌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김 판사의 생각이다. 오히려 어른들에 대한 반감을 높이고 사회로부터 마음을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소년 범죄가 성인 범죄와 다른 점은 개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만 19세 이상 성인의 경우 이미 독자적인 자아가 형성된 상태이기 때문에 범죄 개선 가능성이 낮은 반면 아이들은 환경을 바꿔주거나 교육을 통해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관리'가 아닌 '교감'
고등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4학년 두 딸을 둔 그녀 역시 딸의 사춘기를 겪은 대한민국 엄마들 중 하나다. 사춘기 자녀 때문에 속을 끓이는 부모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말도 못 붙이게 하고, 방문도 걸어 잠그고, 저도 엄청 고생했어요. 도대체 이 아이가 왜 이럴까 고민도 많이 하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그때 제가 느꼈던 것이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거예요. 엄마 아빠는 항상 너를 사랑하고 지켜보고 있다, 네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면 엄마 아빠가 도와줄 것이다라는 걸 끊임없이 확인시켜주고 신뢰관계를 형성했다면 겉으로는 질풍노도지만 내면에서는 제어가 돼요. 어릴 때 부모가 정해준 행동범위가 남아 있는 거죠. 아이들은 자신과 신뢰관계를 형성한 이에게는 배반하지 않거든요. 재판을 하며 '공부 잘하는 거 다 필요 없다, 바르게만 자라다오'를 얼마나 외치는지 몰라요. 공부 잘하는 것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아이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제어가 안 돼요."
아이가 탈선의 길로 접어들었다 싶으면 일단 한발 물러서라는 것이 그녀의 조언이다. 같이 싸우다 보면 상처만 더 커진다. 판사로서뿐 아니라 엄마로서 아이를 겪으며 터득한 교훈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를 시험해요. 부모가 제일 아파하는 부분을 건드려 화를 내게 만드는 거죠. 그 싸움에 말려들어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 돼요. 서로 상처 입고 관계만 더 나빠져요. 부모는 아이에게 조언을 해 아이가 달라졌으면 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부모의 입장입니다. 오히려 한발 물러나는 게 좋아요. 아이와 싸우겠다 싶으면 그냥 조용히 문 닫고 나오세요. 아이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세요."
아이와의 소통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면 청소년 관련 상담센터나 아버지학교, 건강가정지원센터 등을 찾아 전문가와 이야기해볼 것을 추천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 분명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있다고 해서 아이를 다 아는 건 아니에요. 아이와 자주 스킨십하면서 믿음을 주세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관리'가 아닌 '교감'입니다. 아이들은 잠시 흔들릴 수 있어요.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건 부모를 포함한 우리 어른들의 몫이라는 거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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