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함 - 한스 멤링
1463년, 패널에 유채, 60x48cm, 국립미술관, 워싱턴
[말씀이 있는 그림]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마리아와 요셉
플랑드르 화가 한스 멤링(Hans Memling, 1435년경~1494년)은 세련되고 우아한 사실적 표현으로 15세기 후반 브뤼헤 화단을 이끌었다.
멤링의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는 장면에도 화가의 리얼리티를 우아하고 세련되게 해석하여 표현한 특징이 담겨있다. 봉헌을 다룬 그림 대부분은 마리아, 요셉, 여예언자 한나 그리고 아기 예수님을 팔에 안은 나이 든 시메온이 나타나곤 한다. 그림 중앙에는 마리아가 서 있고 그녀의 왼쪽에 붉은 옷을 입은 요셉이 보인다. 오른쪽에 시메온은 마리아에게서 받은 아기 예수님을 매우 조심스럽게 안고 있다. 그 뒤로 아기 예수님을 보고 놀란 동작을 취하는 여예언자 한나도 표현돼 있다. 이 밖에 성경에 등장하지 않은 몇몇 인물은 이 작품을 주문한 주문자의 요청에 따라 그의 가족들을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성전 봉헌 장면의 배경은 15세기 플랑드르 회화에서 지주 묘사되는, 화려하고 웅장한 고딕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오른쪽 뒤 건물 경계 부분의 벽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교회의 모습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신자)가 예수님께서 세운 교회를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드러낸 묘사이다.
그림 오른쪽 시메온은 조그만 아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의 행동과 표정은 귀한 분을 모시듯 신중한 모습이다. 시메온은 평생을 성경 말씀 안에서 살아온 “의롭고 독실한”(루카 2,25) 사람이다. 성령께서 그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메시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전하였다. 나이 든 시메온은 성령께 인도되는 순간 성전에 온 아기 예수님을 보고서는 그분이 누구를 위한 분인지와 그분이 구원의 빛으로 오시는 메시아임을 확신하였다. 봉헌된 아기 예수님의 아래에는 깨끗한 흰색천이 덮인 제단이 있는데, 이것은 성찬식의 의미를 나타낸다. 예수님을 보고 놀라 손을 펼쳐 든 여예언자 한나에게도 하느님은 그녀가 죽기 전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하였고, 한나는 이 소식을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증거하는 사명도 감당하였다. 한나는 혼인 후 남편과 7년 동안 살다가 84세가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녀는 오직 예언자로서 하느님만 바라보며,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없이 단식과 기도로써 하느님을 섬겼다고 한다. 이들은 일생 소망한 대로 구세주를 만나게 되고, 예수님의 구원 사업을 예언하는 복된 사람들이다.
왼쪽에 붉은 망토를 입은 요셉은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왼손에는 새장을 들고 있다. 새장에는 신전에 바칠 비둘기 한 쌍이 있다. 멤링은 물주전자 형태의 버들가지로 만든 새장 안에 비둘기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산비둘기는 성스러운 신부와 관계된 교회의 표징이다. 또한 아기 예수님의 정결례 당시 제단에 드려야 할 제물의 규정에 따라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루카 2,24)를 바쳤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이래, 예수님도 하느님께 바쳐진다. 마리아와 요셉은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충실하게 따르려 한 것이다.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즐겨 이룹니다. 제 가슴속에는 당신의 가르침이 새겨져 있습니다.”(시편 40,9)
[2014년 12월 28일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