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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예수님 - 나달

by 파스칼바이런 2016. 2. 5.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예수님 - 나달

1595년, 목판화, 성녀 글라라대학.

 

 

[말씀이 있는 그림] 요셉의 아들

 

제롬 나달(Jerome Nadal, S.J., 1507-1580)은 성경 내용에 따른 아름다운 그림을 삽입하여 예수회의 화보집인 『복음서 묵상 삽화(Evangelicae Historiae Imagines)』를 제작했다. 모두 153면으로 된 화집 가운데 40번째 장면은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예수님>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인 나자렛 회당에 가서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과 함께 구약의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신다. 엘리야 예언자가 이방인인 사렙다 마을의 한 과부를 기근에서 구해준 이야기(1열왕 17,8-16)와 엘리사 예언자가 시리아의 한 이방인의 나병을 고쳐 준 이야기(2열왕 5,1-14)이다. 모두 하느님이 예언자를 통하여 은혜로운 일을 하셨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예수님에 의해 이방인들에게 복음 선포가 시작될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나달의 삽화 왼쪽 아랫부분에는 기근에 처한 과부를 구해주는 장면이, 그 위에는 나병을 고쳐주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 내용을 회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나누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화면의 오른쪽 맨 위에 멀리 작게 그려져 있다.

 

회당에 있던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처음에는 매우 흥미롭고 놀라워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모두 은총으로 가득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림 오른쪽 위에 자리한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어지는 장면은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데리고 나온 묘사이다. 끝으로,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벼랑 끝에서 떨어뜨리려고 한다. 왜 이들은 예수님을 이토록 아슬아슬한 높은 벼랑까지 끌고 가서 밀려고 하는 것일까?

 

성경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을의 벼랑까지 끌고 갔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 이야기의 배경은 나자렛으로, 이 고을은 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벼랑 아래를 보니 아찔하기만 하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죽음의 위험에 처한 상황을, 실제의 지리적 배경과는 달리 산 위로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 한 사람에 맞서 여러 사람이 온힘을 다해 예수님을 아래로 밀어내려 한다. 벼랑 끝에 놓인 예수님은 한발이라도 앞으로 내밀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위험한 순간에 놓여 있다. 이 장면은 마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려 나와 골고타산 위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맞으신 것을 연상시킨다. 예수님의 예언자적 말씀을 거부했던 유다인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구원이라는 과업을 완수하시고자 예루살렘 밖 골고타산 위에서 돌아가셨다.

 

회당에 모인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목수 요셉의 아들로만 여겼다. 이러한 예수님이 그들이 존경하는 예언자들을 자신과 견주고 있는 것에 분노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아무리 훌륭한 예언자일지라도 그들의 편견적 사고로 예수님의 참모습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33)

 

[2016년 1월 31일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