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 시인 / 잠의 현상학
그러니까 해부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버리겠다는 말, 섬세한 살과 부드러운 뼈, 꽃양배추를 닮은 뇌를 잠에 감추었다 누군가 깨워주길 바라면서
그리하여 쉽게 꺼낼 수 없었다 시시로 걸어오는 이상론자, 꼭 깨어있어야 허물 수 있다는 말은 아니었으므로
해결된 듯한, 어쩌면 터지고야 말 울분의 끝막음으로, 말하자면 한순간 휩쓸린다는 것이다 얼마의 내가 분해되었다 나의 입자는 고르거나 거칠거나
불면을 수집하는 수요일 3시 43분, 몸이 몸에서 떨어진다 공간이 공간에서 흩어진다 잠은 감각적이다 숨을 고르는 잠이 입체적인 꿈을 만든다
나는 깊은 잠에 존재합니까
몇 개의 잠을 통과했다 꽃잎 한 장의 그늘에 몸을 넣고 나도 그늘이었으면 아름다움과 긴장이 공존하는 곳에서 세기를 기록하는 사람이었으면
몸을 통과하는 바람과 몸이 느끼는 고통 중 어느 것을 택해야 하나 뇌의 한복판은 내가 설정한 잠의 허구, 화병과 종이를 갖고 싶었다 미로를 그렸지만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무도 모르게 그늘이 자랐다 잠과 잠의 바깥에서 뇌파곡선이 가늘어졌다 그늘 너머로 가는 나와 비어있는 내가 엇갈린다
계간 『문예바다』 2018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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