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복음] 대림제3주일- 우리가 기다리는 그분입니까 임상만 신부 (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19.12.15 발행 [1543호]
▲ 임상만 신부
얼마 전 여행 중에 부산 자갈치시장을 들른 적이 있다. 번잡하지만 꽤 깨끗한 시장 좌판에 일행이 자리하자 인심 좋게 음식을 건네주는 주인아주머니 손가락에 묵주반지가 끼워져 있다. 반가운 마음으로 “아주머니 어느 성당 다니세요?” 하고 물으니 “무신, 지금은 성당 안 다녀요. 시누이 따라서 한동안 열심히 다녀봤는데 예수님과 나는 잘 안 맞나 봅디다. 예수 믿고부터 장사도 더 안되고, 몸까지 아프고….” 예상치 못한 대답에 매우 당황스러워 “그러면 그 묵주반지는 왜 아직도 끼고 있으세요?” 물으니 “이게 금반지라서 그러지요. 그리고 이걸 버리면 더 재수가 없을 것 같아서…”라며 말을 흐렸지만, 그 눈빛에는 한동안 예수님께 가졌던 기대와 실망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늘 복음에 옥에 갇힌 요한 세례자가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어 메시아인지 아닌지, 아니라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는지 묻는 대목이 나온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 11,3) 요한 세례자는 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한 지도 꽤 되었기에 이제는 신음하는 백성을 구해내기 위해 모종의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제자들을 통해 전해진 소식은 가관이었다. “우리는 메시아가 다스리는 나라를 준비하기 위해 매일 금식하면서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매일 먹고, 마시면서 정치적인 움직임은커녕 쓸모없는 가난한 자, 병든 자들만 상대하고 더욱이 세리와 창녀들과도 노닥거리며 사는데 그가 정말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구약 성경에 약속된 메시아의 활동은 이방 민족을 심판하시고 영광스러운 다윗 왕조를 온 세계 위에 세우심으로써 그 나라의 모든 병자가 치유되고 희년이 선포되며 낙원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로마의 속국이며 이를 전하는 자신은 오히려 감옥에 갇혀 있으니 마땅히 하느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왕권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의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행하는 모든 일에서 이미 그 나라가 왔으니 의심하여 넘어지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리고 당신이 행하신 일을 보고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와 있음을 믿고 흔들리지 않는 자가 진정한 복된 자라고 격려하신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기대와 교회에 대한 기대가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방식으로 그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곧 실망과 비난으로 바뀐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믿고 교회에 올인하고 있는데 나의 문제를 전혀 해결해주시지 못하는 예수를 계속 믿어야 하나?’ 하고 불만을 토로하며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진정 하느님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통해야만 하고, 예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수용의 문제는 결국 자기가 넘어서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이 시기에 예수님께 대한 실망감으로 혹은 체념으로 넘어져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물론 우리의 예수님께 대한 기대와 바람은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보다 더 소중할 수 없다. 예수님을 소유하지 못하면 우리의 구원도, 하느님의 나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대와 기도에 모조리 응답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께서 선포하신 복음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고, 자신이 지금 예수님과 멀리 있다고 여겨지면 요한 세례자처럼 예수님께 직접 질문해 보는 게 어떨까 한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
'<가톨릭 관련> > ◆ 성 경 관 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18) 귀고의 영적 사다리 (0) | 2019.12.17 |
---|---|
[말씀묵상] 지행합일(知行合一) (0) | 2019.12.15 |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42) 예루살렘 사도 회의 (0) | 2019.12.11 |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17) 수도승 생활의 성경 독서 (0) | 2019.12.10 |
[생활속의복음] 대림제2주일 - 먼저 회개하고 마음을 비워라 (0) | 2019.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