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주님 공현 대축일 - 빛을 찾아가는 이들 손희송 주교(서울대교구 총대리) 가톨릭평화신문 2020.01.05 발행 [1546호]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발자취를 느껴보려고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떠납니다. 지금은 편리한 교통수단 덕분에 큰 힘이 안 들지만, 과거에는 도보로 고생고생하면서 가야 했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열망이 없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멀고 험한 여정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그 멀고 험한 여정을 거쳐 예수님을 만나는 세 명의 동방 박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별의 인도를 받아 멀리 동방(아마도 페르시아)에서 이스라엘까지 와서 아기 예수님을 찾아뵙고 경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바칩니다. 황금은 왕에게 바치는 예물로서 예수님이 진정한 왕이심을 고백하는 것이고, 제사 때 사용되는 향료인 유향은 예수님이 참 하느님이심을 인정하는 표징입니다. 몰약은 시신에 바르는 방부제로서 예수님이 참 인간이시며 우리를 위해 수난을 당하실 분임을 예고하는 상징입니다.
우리도 동방 박사들처럼 하느님을 향한 열망에서 예수님을 찾아 나서는 이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구원의 빛이신 그분만이 우리 내면의 어둠과 주변의 암흑을 몰아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빛 안에서만 믿음과 희망, 사랑이 가득한 ‘나’로 성장하고 ‘우리’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동방 박사들처럼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수님께 예물로 바치면 좋겠습니다. 황금을 바치면서 돈, 명예,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삶의 참된 임금이심을 인정하고 고백하기를 소망합니다. 유향을 바치면서 내 자존심, 내 생각, 내 상처, 나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을 참 하느님으로 섬기기를 기원합니다. 몰약을 바치면서 참 인간이신 예수님을 닮아 다른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그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이 되기를 다짐합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욕심, 바람, 생각, 한 마디로 자기 자신을 주인으로 받드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신앙인들과 교회가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고는 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래로 인간에게는 ‘하느님처럼 되려는 욕심’(창세 3,5 참조), 곧 자신이 하느님의 피조물임을 교묘하게 부정하고 이 세상의 중심이 되려는 경향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합니다. 신앙인은 이런 유혹을 거슬러서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도록 끊임없이 애써야 합니다.
세상과 이웃, 나 자신 모두 중요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주인이 되시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은 의미를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변질될 위험이 큽니다. 하느님이 빠지면 신앙은 독선으로 흐르고, 정의는 폭력으로 변질되며, 아름다움은 천박해지고, 지식은 혐오스럽게 되기 쉽습니다.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태양이 비칠 때 영롱한 빛깔을 드러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모든 것은 하느님의 빛 안에서만 그 의미와 가치가 드러납니다. 그 빛을 찾아가서 그 안에 머무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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