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주님 세례 축일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20.01.12 발행 [1547호]
▲ 임상만 신부
“그리스도교는 말씀과 비움의 종교입니다.”
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면 원하는 것이 다 이뤄지느냐는 입교 신자의 물음에 대한 나름의 대답이다. 하느님을 진실하게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얻어내기 위함이 아니라, 매 순간 그 욕심을 버리고 하느님 말씀대로 살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 행복을 얻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들을 다 얻으면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하나의 얻음은 또 다른 얻음을 향한 다른 욕심의 연결일 뿐, 행복은 욕심의 채움으로가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자비로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는 우리가 세상의 죄와 욕심에 대해 회개하여 사함을 받고, 오직 말씀으로 하느님 나라 살기를 시작하는 새로운 징표이다.
오늘 복음에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 세례를 청하시자 재차 사양하는 그에게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마태 3,15)라고 말씀하신다.
말라키 예언자 이후 인간의 죄악과 허물 그리고 우상 숭배가 극에 달하자 하늘의 문이 닫히고 하느님의 모든 축복과 계시 그리고 소통은 단절되었다. 이때부터 인간은 더이상 하느님의 뜻을 알지 못하여 계시로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본성으로만 살아가기에 이른다.
성경을 보면, 많은 유다인들이 그릇된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멀어진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노력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자기들 나름대로 율법을 철저히 지켰으며, 하느님의 뜻을 잊지 않기 위해 율법의 내용을 문설주에 쓰거나 성구갑에 넣어 달고 다니기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여 지속적인 죄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로마 10,3)이라며 그들의 어리석음을 질책한다.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은 우리가 율법대로 얼마나 열심히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열심의 목적이 오직 하느님의 뜻과 의로움을 드러내는 데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는 예수님의 말씀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방식을 먼저 받아들여 그분의 의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길임을 확인해주고 있다.
하느님의 의로움을 먼저 드러내는 생활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며 낮추신 겸손의 삶 그대로 우리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닫혀있던 하늘이 열렸다. 그동안 우리의 죄와 허물로 닫혔던 하늘 문을 열어 놓으시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친히 소통의 문, 기도의 문, 만사형통의 문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하늘의 문’으로 많은 백성이 들어가고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전교에 더욱 힘써야 하겠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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