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생활속의 복음] 주님 봉헌 축일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1.

[생활속의 복음] 주님 봉헌 축일

결국, 우리는 봉헌되는 사람

강석진 요셉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가톨릭평화신문 2020.02.02 발행 [1549호]

 

 

▲ 강석진 신부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내는 오늘은 ‘축성 생활의 날’이기도 합니다. 1997년부터 지내기 시작한 이 날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지정하셨습니다. ‘주님 봉헌’과 ‘수도자의 봉헌’! 넓은 의미로 생각할 때, ‘봉헌’에 관한 비슷한 개념이라 ‘주님 봉헌’에서 ‘봉헌 생활의 날’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겠지만, 다른 측면에서도 중요한 묵상 거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 봉헌’은 주님께서 자신을 봉헌했던 것이 아니라, 부모에 의해 봉헌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 봉헌’은 요셉과 마리아가 절차 없이 예수님을 봉헌한 것이 아니라, 구약 성경의 레위기(12,1-8)에 있는 정결례 규정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의 부모는 아기를 위한 속죄 제물로 ‘산비둘기 한 쌍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쳤습니다. 또한 ‘주님 봉헌’을 위한 여정은 산모였던 마리아와 품에 안긴 아기 예수님이 요셉의 인도에 따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에서부터 150km나 떨어진 먼 길을 걸어간 후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헌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주님 봉헌’은 주님이 양부모에 의해 봉헌된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와 함께 수도자들은 주님의 모범에 따라 자신이 잘 봉헌되도록 노력하는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저는 수도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 ‘나를 주님께 봉헌했다’는 생각에 무척 우쭐거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한 해, 한 해를 넘기면서 점차 목에 힘이 들어가고 삶에도 무게가 잔뜩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무거운 수도자로 10년, 20년 살다 보니, 무게감 때문에 힘들고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많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나를 봉헌하기에도 버거운 수도자’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깨닫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봉헌’이라는 말은 능동형이 아니라 수동형이라는 사실을. 또한, 수도자는 자신을 봉헌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봉헌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기 예수님이 부모에 의해 봉헌되듯, 우리 또한 공동생활 안에서 형제들에 의해 봉헌되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수도 생활이란 결국 공동체가 형제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나를 잘 봉헌할 수 있도록 내 힘을 빼는 것입니다. 내 형제들이 나를 주님께 봉헌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무게를 줄여나가는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삶의 힘을 빼고, 마음의 무게를 줄였더니, 공동체 안에서 느끼는 필요 이상의 긴장감도 줄어들고, 사도직에서 만나는 사람들 또한 편안하게 대할 수 있었습니다. ‘봉헌 생활’은 결국 ‘나 중심의 무게’를 줄이고,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봉헌되는 사람답게 잘 살아간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보고 비둘기 한 쌍의 속죄 봉헌물을 하느님께 바쳐줄 것입니다. 아멘.